필자는 1999년부터 중국과 조선의 변방을 두루 다니며 북한 선교의 길을 찾았다. 1999년 3월 1일, 필자는 중국과 조선의 접경지대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날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고 날씨는 스산했다. 우리 일행은 두만강을 끼고 백두산을 향해 달려갔다. 도로는 비포장이었으며 두만강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어느 한적한 조선족 마을에서 미리 주문한 점심을 먹었는데 그곳은 평범한 민가였고 두만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놓았다.
그날 필자가 그곳에서 먹은 민물매운탕은 내 인생에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가장 강렬한 음식이 되었다. 평소 매운탕을 좋아하지만 그렇게 맛있는 매운탕은 처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된 빨간 고추장만으로 끓여낸 민물매운탕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그 조선족 집 밖 두만강 앞에서 북한을 바라보니 불과 몇 미터밖에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웠고 북한의 어린 병사가 설거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들고 소리를 지르니 필자를 쳐다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북한과 가까이 만나기 시작했다. 물론 필자는 강원도 양구 비무장 지대에서 초임 군목으로 복무할 때도 가까이서 북한을 만났었다. 비무장 지대 안에서 근무하는 우리 병사들을 찾아가 위문했던 경험은 필자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섬의 북한 사역은 필자의 삶의 궤적과 교차한다. 필자는 북한을 마지막 사역지로 여기며 살아왔다. 한반도의 문제는 세계의 문제이며 동시에 선교적 과제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80년대를 살아온 필자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선교적 삶을 주창하는 필자에게 북한 사역 나아가 통일과 평화의 사역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북한을 넘어 만주와 몽골, 중앙아시아와 튀르키예를 잇는 선교적 상상력은 하늘이 필자에게 주신 비전이며 목적이다. 그러므로 나섬의 북한 사역은 통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선교적 전략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의 갈 길이 아니다. 그래서 나섬은 언제나 지속 가능하며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선교만을 일관되게 해왔다.
먼저 나섬은 동남아 T국에서 탈북자 사역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중국에서 넘어온 탈북자들을 3개월 동안 섬기고 선교하는 사역을 한다. 나섬은 그곳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역만으로 북한 사역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부족하다. 생존을 위해 찾아온 이들을 섬기는 것은 인도적 측면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선교적으로 얼마나 의미를 갖는지는 언제나 고민이다.
탈북자들의 대한민국으로의 유입은 뜨거운 감자다. 때로 탈북자 사역이 깊은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들어오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북한 사역이라는 명분을 갖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란 무척 어렵다.
그럼에도 나섬은 동남아 국가로 들어온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려 한다. 그곳에서 탈북민들은 3개월 동안 함께 숙식하며 성경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때 처음 복음을 듣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