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새해 하늘이 우리에게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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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볼콘스키는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가장 복잡하고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당시 러시아 상류층에게 나폴레옹은 조국을 위협하는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제를 무너뜨린 영웅이자 천재적 전략가로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소설 초반의 안드레이 역시 무료함과 허영으로 가득한 사교계에 환멸을 느끼며, 나폴레옹처럼 전장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에게 나폴레옹은 타도해야 할 적군 사령관인 동시에 닮고 싶은 ‘초인’의 상징이었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러시아군의 전세가 기울어 병사들이 후퇴하던 절체절명의 순간, 안드레이는 버려진 군기를 움켜쥐고 적진을 향해 선두에서 돌진한다. 그는 영광의 순간을 꿈꾸며 광기 어린 포화 속으로 몸을 던졌으나 곧 적의 공격에 머리를 맞고 차가운 대지 위로 쓰러졌다. 정신을 잃어가던 그가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승리의 함성도 자욱한 화약 연기도 아닌 ‘높고 푸른 무한한 하늘’이었다. 그는 땅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높고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기만이다.” 영원한 하늘 아래에서 그는 자신이 쫓던 명예와 증오, 그리고 우상이었던 나폴레옹의 존재감마저도 한낱 먼지처럼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2026년의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풍경도 안드레이가 내달리던 19세기의 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전쟁터에는 여전히 상대를 섬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증오와 대립의 포성이 가득하다. 각자의 신념이라는 깃발을 들고 돌진하는 모습은 나폴레옹의 영광을 좇던 안드레이의 집착을 닮았다. 그러나 쓰러진 뒤 그가 발견한 하늘은 갈구하던 승리도 두려워하던 패배도, 인간의 위대함조차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덧없는지를 일깨워 준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혐오는 어쩌면 우리가 하늘을 보지 못하고 전쟁에 몰입한 필연적인 소음일지도 모른다.

한 해 동안 마주할 수많은 갈등 앞에서,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해야 한다. 요란한 소음 너머의 무한한 고요 앞에 서면,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던 이유들은 한낱 먼지처럼 작아질 것이다. 올해는 증오의 칼날을 거두고, 우리 모두가 유한한 존재로서 서로를 연민하며 같은 하늘 아래 머무는 ‘평화의 기적’을 일구어내길 소망한다. 하늘을 우러르며, 한점의 소음도 남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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