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의 2009년 저서에 따르면, 조선 후기 양반 신분은 전체 인구의 80~90%에 달할 만큼 흔해졌지만, 신분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치르는 과거시험에 합격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인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고려 시대부터 ‘족집게 과외’가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스타 강사는 충렬왕 때의 선비 강경룡이었습니다. 그의 제자 10명이 모두 급제했다는 기록은 오늘날의 입시 열풍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습니다.
현재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 역시 80~90%에 육박하지만, 단순히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연간 입학 정원이 1만 5천 명에 불과한 ‘SKY’ 대학에 진입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인구 3억 명인 미국의 아이비리그 8개 대학 졸업장이 매년 1만 장뿐인 것과 비교해도 우리 사회의 경쟁은 매우 기형적입니다. 이 좁은 문에 들지 못하면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불안감 때문에 공교육을 넘어선 사교육과 족집게 학원이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을 숫자로 서열화하는 문화의 기원은 1936년 음악잡지 ‘빌보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방송 횟수로 순위를 매겼으나, 이제는 다운로드와 유튜브 조회 수까지 합산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숫자의 논리가 입시전쟁과 같은 잔혹한 경쟁 구조를 고착화했다는 점입니다. 정치권에서도 팔로워 숫자를 권력으로 착각해 조작을 일삼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호주와 인도네시아 정상들의 팔로워 중 상당수가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한 ‘클릭 공장’을 통해 조작된 가짜라는 사실은 숫자에 함몰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줍니다.
종교계 역시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 합계가 국가 통계상의 인구수보다 많게 집계되는 현상은 숫자를 곧 ‘힘’으로 믿는 세태를 증명합니다. 성경 속 다윗의 인구 조사 역시 같은 맥락의 범죄였습니다. 그는 제사장이 아닌 군대 장관 요압을 통해 군사력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백성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자신의 군사력으로 과시하려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조사를 마치고 곧바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라며 회개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가 됩니다. 아무리 신앙이 깊은 이라도 숫자를 자랑하고 사람을 의지하려는 유혹에 언제든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올 한 해, 우리의 사업과 삶에서 눈에 보이는 ‘숫자’의 허상에 매몰되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갑시다.
김한호 목사
<강원노회 노회장•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