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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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둘 일이 아니라는 우리 옛말은 어떤 연유에서 생겨났을까? 머리 검은 짐승은 인간을 말함이고 결국 사람은 은혜를 갚을 줄 모른다는 말이니 어찌 된 일일까? 고래로 보은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일임을 말하고 있음이다. 이 옛말은 역설적으로 보은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는 경구인 셈이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아일라’라는 영화를 소개하시면서 튀르키예와 우리의 형제국 표현에 대한 역사를 간략히 설명하셨다. 6.25 전쟁 중에 중공군의 침공으로 완전 폐허가 된 어느 마을에서 5살짜리 소녀 단 한 명이 생존했고 곧 그 마을에 들어간 튀르키예 병사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지고 그가 부대로 데려와 보호하고 함께 키우다가 귀국 명령이 떨어지자 가방 속에 아이를 넣어 숨겨 나가려다가 발각되어 할 수 없이 고아원에 맡기고 떠난다. 꼭 찾으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났으나 말년에 6.25 참전 용사 초청으로 한국에 오게 되어서야 상봉한다. 

전쟁 당시 고아들이 많이 생기자 튀르키예 병사들이 수원에 안카라학원이라는 고아원을 세우고 병사들이 봉급에서 얼마씩을 쾌척해 운영했다는 말씀을 듣는데 가슴을 밀고 올라오는 설움과 회한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아아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6.25 전쟁 당시 세계로부터 받은 도움은 말로 다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많았다. 그중에서도 고아들의 문제를 생각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많은 고아들을 위해 수많은 고아원이 설립되었고 그 대부분이 외국의 지원으로 운영되었다. 기독교의 후원이 대부분임을 생각하면 우리는 염치없이 보은을 외면하고 살아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세계 각처의 교회들과 선교관련 기관들로부터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구호물자는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헐벗은 몸을 입혀주었다. 1950년대 후반까지도 캐나다는 엄청난 물량의 융을 보내 주어 여학교에 배분되어 여고 3학년 때 재봉실습용으로 우리들은 그 옷감으로 잠옷을 만들어 입었다. 세계 10위권 이내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우리나라가 세계를 위해 돕는 보은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우리 각자가 그때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실천해 본 일이 있는가? 나는 별로 한 일이 없어 부끄럽고 서럽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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