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사회의 눈과 입’이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호흡’과도 같다. 종종 언론이 공익 실현의 마중물 역할을 해서, 언론기관을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라고 일컫는다.
호주 원주민 권익 옹호에도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38년 호주 건국 150주년 행사에 항의하며 열린 원주민 행사 이후에 원주민 신문을 창간했다. 신문의 제목은 원주민의 외침을 뜻하는 “디 오스트레일리안 아보 콜(The Australian Abo Call)”이었다. ‘아보’는 ‘아보리진(Aborigine, 원주민)’의 줄임말이다.
신문은 그해 4월 원주민 활동가 잭 패튼(Jack Patten)이 중심이 되어 창간했다. 8만여 명 원주민을 대변하는 최초의 전국지였다. 1937년에 NSW에서 창설한 ‘원주민 진보 협회’(APA) 기관지 성격도 갖고 있었고, 백인 후원자의 지원도 받았다. 패튼은 창간호 편집사에서 “선교사나 인류학자의 관점이 아닌, 원주민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제시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밝혔다. 원주민 권리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자는 제안이었다.
신문은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1938년 9월호인 6호를 끝으로 폐간했지만, 전국적인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 원주민 문제를 공론화하고, 정치적 행동을 선구적으로 조직하는데 기여했다.
창간호는 애도의 날 정신을 계승해 원주민 권리를 주장했다. 잭 패튼과 윌리엄 퍼거슨(William Perguson)이 조셉 라이언스 총리를 면담하고 전달한 10개 항의 정책 요구안 전문을 게재했다.
평등한 시민권, 교육 기회 보장, 정착촌 거주 여부와 무관한 연금 수급권 등의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1월 26일에 시드니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회의’ 진행과 주요 발언자의 활동을 다루었다. “우리는 열등한 인종이 아니다”라고 자기 결정권과 정체성을 선언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정착촌의 열악한 교육과 주거 환경을 비판하면서 ‘원주민 보호 위원회’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아보 콜은 원주민이 직접 편집하고 발행한 최초의 신문이었다. 호주 인권 운동사에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발행 자금을 지원한 APA의 백인 지원단체 ‘원주민 시민권 위원회’의 주요 후원자 윌리엄 존 마일즈(W.J. Miles)가 파시즘에 우호적인 극우 정치 성향을 띠고 있어서 논란과 내부 갈등을 촉발하기도 했다.

변창배 목사
전 총회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