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 집사를 생각하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사랑의 원자탄의 손양원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그를 지금도 태연하게 대면하고 있다.
정상인으로서 시각장애인을 도와주지는 못할지라도 해를 가하려 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어서 속히 저들이 올바른 심정으로 돌아와 다 함께 선한 사역에 힘써 주기를 기대해 본다.
억울하게 경찰서에 불려간 일
사람들이 제일 가기 싫어하는 곳이 있다면 치과나 병원에 가는 일, 그리고 밤에 공동묘지 가는 일이다. 경찰서 또한 그러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억울하게도 경찰서에 세 번이나 불려가 본 적이 있다.
80년대 초 어느 날 저녁에 느닷없이 서대문 경찰서로 나와달라는 통지서가 왔다. 나는 깜짝 놀라기도 했고, 무엇 때문일까 궁금해서 그날 밤 한잠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경찰계에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부탁해서 미리 만나볼 수 있도록 주선해 약속을 하고 서대문 경찰서에 난생 처음으로 갔다.
담당 형사와 마주앉아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경찰서에 오라는 통지서를 보냈는지 물었다. 형사는 책상을 열더니 7~8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니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람이 사고로 부도를 낸 후 백수로 지내던 중 음악에 소질이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모아 중창단을 만들어서 교회와 단체를 다니며 노래하고 받은 사례금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중창단을 이끈 윤모씨가 자기네 중창단을 불러달라고 할 때마다 각 단체나 교회에서는 “김선태 목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또는 “김선태 목사에게 허락을 받아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김선태 목사가 아니면 당신네 중창단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윤씨는 나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어떻게든 나를 괴롭힐 구실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고려합섬 장치혁 회장과 몇몇 실업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 당시 5억이 넘는 기금을 마련해 실로암 안과병원을 세울 계획을 그가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고, 누가 관리하는지 알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 돈은 최 장로와 이모 집사가 조흥은행 지점장으로 있었을 때 그들이 관리했을 뿐이었다.
그 후에 최 장로의 소유 837평을 실로암 안과병원을 세우기 위한 터로 샀다는 것과 그의 대지를 팔아 다시 재매각을 하고 조금의 터만 남겨놓았다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윤씨는 자신의 중창단 단원을 시켜서 김선태 목사가 15억을 착복했다고 경찰서에 고발했던 것이다.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었고, 성직자가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명예훼손죄로 고발해 교도소에 넣을 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용당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단원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나는 형사에게 이 기금을 실로암 안과병원을 세우기 위해서 모금한 돈이고 또한 15억도 되지 않을 뿐더러 그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나는 그 돈을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형사는 대질 신문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를 고소한 시각장애인을 불러 조사하니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었다. 형사가 그에게 “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런 일을 했느냐?”라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윤모씨란 사람이 김선태 목사 때문에 우리 중창단이 잘 안되어 김 목사를 제거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고 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