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축시대 세상 읽기] 204년 만에 토지 소유권을 다시 찾은 호주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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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독특한 기념일과 기념행사가 있다. 호주는 매년 6월 3일을 ‘마보의 날’로 지킨다. 원주민 에디 마보(Eddie Koiki Mabo)의 법정 투쟁 승리와 ‘테라 눌리우스’ 정책 폐기를 기념하는 날이다. 5월 27일에 시작하는 국가 화해 주간의 마지막 날을 장식한다.

마보의 날이 되면 호주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기념행사가 열린다. 2025년 멜번에서는 페더레이션 광장에서 원주민 아티스트들의 무료 콘서트를 개최하고, 단편 영화 상영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

마보는 호주 북부의 머레이 섬 출신이다. 마보는 1967년부터 제임스 쿡 대학교(JCU) 타운즈빌 캠퍼스 정원사로 일했다. 1974년에 역사학자 헨리 레이놀즈와 노엘 루스 교수와 점심을 먹던 중에 자신이 소유한 머레이 섬의 땅이 법적으로 퀸즐랜드 주 정부 소유라는 사실을 알았다. 큰 충격을 받은 마보는 점심 시간마다 JCU 도서관에서 자신의 부족인 메리암 족의 역사와 인류학 자료를 연구했다.

1970년대 후반 호주 전역에서 원주민 권리 운동이 활발해지자 1981년 타운즈빌 조약 위원회가 탄생했다. 1977년에 설립한 어보리진 조약 위원회의 타운즈빌 지부 성격을 갖고 있었다. 마보는 노엘 루스 교수와 함께 위원회 공동의장이 되어 1981년에 JCU 정치학회, JCU 학생회와 함께 ‘토지 권리와 호주 인종 관계의 미래’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컨퍼런스가 호주의 원주민 토지 소유권 회복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마보는 컨퍼런스에서 연설하면서 머레이 섬의 전통적인 토지 소유와 상속 시스템을 설명했다. 노래를 통해 담장(Tuk)과 경계를 구분하는 ‘말로의 신화’라는 정교한 관습법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호주의 토지 소유권은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주인없는 땅) 원칙에 기초하고 있었다.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동해안을 영국 영토인 뉴사우스웨일스로 선포했다. 원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럽식 농경이나 정착 형태가 없다는 이유로 ‘비어있는 곳’으로 간주했다. 이 선포에 따라 1788년 아서 필립 총독이 이끄는 제1함대가 시드니에 상륙해서 영국 국기를 게양했다. 원주민과의 조약이나 협상 없이 정착에 의한 점유 방식을 택해서 테라 눌리우스 원칙을 실무적으로 적용했다.

1835년에 뉴사우스웨일즈 리처드 버크 총독은 버크 총독 선언을 발표해서 테라 눌리우스 원칙을 법적으로 공식화했다. 원주민을 땅의 주인으로 전제한 존 배트먼의 조약 등의 모든 사적 계약을 무효화하고, 오직 영국 황실만이 토지 소유권을 가진다는 선언이었다. 영국 추밀원은 1889년에 호주가 식민지 건국 당시 기존의 법체계가 없었다고 확인하고, 테라 눌리우스 원칙을 판례로 확정했다.

1982년에 마보를 비롯한 머레이 섬 메리암(Meriam) 부족 원주민 5명이 퀸즐랜즈 주정부를 상대로 머레이 섬의 토지 소유 권리 청구 소송을 퀸즐랜드 고등법원에 제출했다. 1992년 6월 3일, 10년 간의 재판 끝에 호주 연방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호주는 재판 후속 조치로 1993년에 ‘토착소유권법’을 제정해서 테라 눌리우스 원칙을 폐기하고 원주민 토지 소유권을 확립했다. 마보의 재판에 JCU 학자들의 뒷받침과 양심적인 변호사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안타깝게도 마보는 재판 승소 5개월 전 56세의 나이로 진행성 암으로 사망했다.

변창배 목사 

<전 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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