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축시대 세상 읽기] 장로교 목사가 시작한 호주 항공 의료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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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연방준비은행(RBA)은 1994년에 20달러권 앞면 인물로 존 플린(John Flynn) 목사를 선정했다. 플린 목사는 1928년에 오지 주민을 위해서 왕립 플라잉 닥터 서비스(Royal Flying Doctor Service, RFDS)를 창설했다. 이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항공 의료 서비스로 ‘하늘 위의 망토’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장로교 목사인 플린은 1928년 퀸즐랜드 주 클론커리에서 대여 비행기 ‘빅토리’로 첫 비행을 시작했다. 당시 호주 오지는 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였다. 가장 가까운 의사라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서 가벼운 부상이나 질병으로도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광대한 대륙의 비극이었다.

1917년 이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호주 서부 킴벌리의 루비 플레인스 목장의 목동 지미 디시가 사고를 당했다. 지미는 말에서 떨어져 소 떼에 짓눌리면서 방광 파열 등 심각한 내부 장기 손상을 입었다. 도로도 없는 거친 길을 12시간 동안 수레에 실려서 가장 가까운 정착지 홀스 크리크로 이송했지만, 그곳에는 의사가 없었다.

사태가 다급하자 우체국장 프레드 터켓이 2천800km 떨어진 퍼스의 조 홀랜드 박사와 모스 부호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긴급 수술을 시도했다. 주머니칼과 모르핀만 사용한 긴급 집도였다. 홀랜드 박사는 지미를 구하기 위해서 소 수송선, 모델 T 자동차, 말을 갈아타고 험난한 여정을 떠났다. 열흘이나 걸려서 박사가 도착했지만, 지미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말라리아와 합병증으로 숨을 거둔 뒤였다.

이 사건이 호주 내륙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신문에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이를 지켜본 플린 목사는 비행기와 무전기를 활용하는 긴급 의료 시스템을 구상했다. 항공 기술 발달과 페달 무전기 발명이 “오지의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을 뒷받침했다. 1930년대에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확대되면서 1934년에 ‘호주 항공 의료 서비스’라는 명칭으로 공식 출범했다. 1955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공로를 인정하고 ‘왕립(Royal)’ 칭호를 붙였다.

1928년에 전기 기술자 알프레드 트래거가 발명한 페달 무전기가 서비스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자전거 페달처럼 발로 밟아서 무전기를 작동했다. 초기에는 모스 부호를 사용했지만, 곧 목소리 통화로 발전했다. 덕분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의사와 실시간으로 상담하거나 비행기를 요청할 수 있었다. 오지의 생명줄이 되었다.

현재 플라잉 닥터는 약 80대에 가까운 항공기와 20개 이상의 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단순 응급 후송을 넘어 원격 진료, 이동식 치과와 투석 서비스, 정신 건강 상담으로 영역도 확장했다. 호주 대륙 어디든 2시간 이내에 도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초기 플라잉 닥터는 백인 정착민을 위한 서비스로 시작했다. 현재는 상당수의 고객이 원주민이다. 최근에는 원주민 건강 전문 인력을 적극 채용하고, 원주민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플라잉 닥터는 의료 서비스를 넘어서 오지 원주민 커뮤니티 내부 소통과 원격 교육 등으로 확장해서 외부 세계 연결을 돕고 있다.

2019년에 호주 신권을 발행하면서 플린 목사의 초상화를 새 초상화로 변경했다. 플라잉 닥터 서비스를 신설한 비전과 열정을 상징하는 젊고 역동적인 초상화를 사용했다. 지폐에는 플라잉 닥터 서비스(RFDS)를 상징하는 빅토리 비행기, 의료 상담에 사용된 페달 무전기, 오지의 의료 지도를 나타내는 도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변창배 목사 

<전 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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