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독립운동의 흔적 속에 살아 있는 믿음의 역사
연동교회 역사관 ②
또 하나 역사관에는 특별한 태극기가 있다. 그것은 구한말 우리나라가 공식적인 국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 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국기가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지금 사용되고 있는 국기의 원형인 태극과 팔괘가 있는 국기를 급하게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고, 그것을 당시 고종 황제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하던 데니(Owen Nickerson Denny)에게 준 것을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갔다. 그의 손에 들렸던 국기가 우리나라 국기로 확정되고 발전해 오늘의 국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때 고종 황제가 데니에게 준 국기가 그의 후손에 의해 다시 돌아왔고, 그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것을 ‘데니 태극기’라고 부르며, 이 태극기는 202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이곳 연동교회 역사관에는 데니 태극기 형식으로 만들어진 초기에 사용하던 국기가 있다. 많이 낡아 보존이 어렵게 된 것을 오랜 시간 복원 작업을 거쳐 전시하고 있다. 비록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의미 있는 데니 태극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근대사 속 연동교회를 충분히 생각하게 한다.
이 태극기가 큰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연동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민족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고 일제의 박해를 받고 있었을 때 한을 품고 나라의 자존감을 확인하며 간직했던 태극기이기에 ‘데니 태극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 역사관에는 또 하나의 태극기가 있다. 그것은 연동교회가 운영했던 연동소학교가 사용하던 국기이다. 이것을 ‘연동소학교 태극기’(1898년~1910년 사이 사용)라고 부르는데, 이 태극기는 당시 연동소학교 교사였던 오현관 장로(당시 집사)가 간직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다시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깊이 감추어 보관했던 것을 1984년 교회에 기증한 것이기에 교회로서는 너무나 귀한 유물이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의미 있는 유산이다.
역사관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송암 함태영 목사이다. 그는 이 교회 3대(1929~1931) 목사로 시무하면서 동시에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비밀리에 준비될 때 그 실무적인 일을 감당한 사람이다. 함태영 목사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들의 도장을 직접 관리한 사람이고, 민족대표로 서명한 사람들이 체포되었을 때 그 가족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았던 인물이다.
함 목사의 특별함은 여러 가지를 찾아볼 수 있지만, 1909년 이 교회에서 천민이 장로로 피택되었을 때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를 이탈하게 되었고 이때 그의 아버지도 동참하게 되었다. 하지만 함태영은 아버지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부자관계가 특별하게 존중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신앙으로 신분을 극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구현했다.
연동교회 역사관에서 함태영의 생애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약속대로 훗날 민족 지도자들의 가족을 살피는 일을 했다. 만세운동과 관련해 그 자신도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다음 192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3년 총회장에 피선되어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한국장로교회를 이끌었다. 해방 후 1952년 제3대 부통령을 지냈고, 1954년에는 한신대학교 이사장과 학장을 지냈다. 1955년에는 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했다.
그 외에도 연동교회 역사관에서는 이 교회 출신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다. 독립협회와 YMCA 총무로 활동하면서 고령임에도 청년들의 미래를 꿈꾸게 했던 월남 이상재 선생, YWCA를 창립한 김필례 선생, 일본에서 먼저 일어났던 독립운동인 2·8선언서를 몰래 가지고 들어와 알렸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김마리아 선생,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 대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정재용 전도사 등이 모두 이 교회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물들과 관련한 근대사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신앙의 선배들을 연동교회 역사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특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