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세브란스관에 남은 정신여학교의 흔적
정신여학교 址 ① (연지동)
현재의 정신여고는 송파구에 있다. 1978년 연지동을 떠나서 새로운 개발지역인 송파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정신여고는 정신여학교라고 하는 이름으로 연지동에서 굴곡의 역사를 이었으며,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이 이곳이기도 하다. 현재 연지동에는 정신여학교의 흔적을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정신여학교가 연지동에 있을 때 본관으로 사용했던 세브란스관 건물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그냥 좀 오래된 건물이구나 하는 정도로 여기게 될 붉은 벽돌로 지은 3층 건물이다. 이 건물은 서울보증보험 건물 바로 옆에 있다. 앞에 있는 대호주차장으로 들어가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정신여학교가 연지동에 있을 때까지 본관 건물로 사용했던 것으로 건물명은 세브란스관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부속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 세브란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광혜원에서 제중원으로, 그리고 다시 세브란스로 바뀌게 되는 과정에서 1904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병원으로 거듭날 때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인 루이스 세브란스(L. H. Severance)의 이름이다. 당시 그는 제중원을 종합병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예산 전액을 기부했다. 따라서 그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종합병원으로 개원할 때 병원명을 세브란스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그의 도움은 단지 병원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기 정신여학교 건물을 짓게 되었을 때도 나눠졌다.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으나 그의 남다른 나눔의 정신은 가난하고 어려운 조선의 현실을 못 본 척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았고, 그것을 찾았을 때 아낌없이 나눈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주변에 있었던 다른 건물들도 세브란스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기부한 돈으로 지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들이지만 현재는 세브란스관만 남았다. 1937년에 지었던 개교 50주년기념관(50평)은 1950년에 헐고 그 자리에 대강당(신마리아관)을 지었고, 1958년에 지은 루이스관과 체육관, 1965년에 지은 필례관 등은 1978년 송파로 학교가 옮겨가면서 이 부지를 매입한 서울보증보험 측이 헐고 그 자리에 현재의 보증보험건물을 지음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세브란스관을 찾아보면서 정신여학교와 함께 했던 선교사들과 지도자들의 면면을 돌아본다면 우리의 현재가 단지 우리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현재는 그냥 낡은 건물이지만 이 건물은 1910년에 지어져서 질곡의 한국 근대사를 지켜보았고, 선교사들의 사역의 중심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670평)의 건물로 지하층은 화강암 기둥으로 쌓았고, 그 위에 3층은 붉은 벽돌로 지었다. 근대에 지어진 건물들 가운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원형대로 남아있어서 찾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을 준다. 이 건물은 당시로서는 규모에 있어서 큰 것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끌었지만 사실은 내부 시설이 특별하게 설비된 건물로 이목을 끌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지만 전기와 수도는 물론 가스와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건물이었기에 당시로써는 초현대식 설비를 갖춘 건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건물이 학교 건물이었으니 당시 이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유일하게 남겨진 세브란스관을 보면서 세브란스의 행적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진다. 우리는 그의 기부에 의해서 세브란스병원 정도를 기억할 뿐 더 이상 그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행인지 근래에 그의 생애에 대해서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한 적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깨우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20세기의 황금알을 낳는 사업인 석유채굴로 당시 최고 갑부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사업으로 얻은 이익을 누구나 갈 수 있는 학교와 병원, 공공 도서관과 연구소, 교회 건물을 짓도록 하고 그 일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왔다. 록펠러와 함께 석유사업을 일으켜 미국을 일으킨 그는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졌고, 그의 도움으로 병원과 학교가 세워질 수 있었다. 그의 관심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그의 기부로 지어진 학교와 병원이 많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