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탄압 속에도 제주 복음화 이끈 개척 목사 이도종
1926년 제19회 후기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이도종은 1927년 김제에서 안수를 받아 제주 출신 첫 목사가 되었다. 김제 농촌 지역에서 전도하며 1928년 김제 신풍리에서 김제중앙교회를 설립했다.
이도종 목사의 동생 이이종은 3·1 독립운동을 하다가 함남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행방불명되었다. 일본 경찰은 그러한 이도종 목사를 경계하고 요시찰 인물로 감시했고, 경찰에 불려가서 엄중한 경고와 협박을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도종 목사는 제주도에서 독립자금사건에 관련되어 투옥된 전력이 있었으므로 김제경찰서는 이도종 목사를 위험인물로 분류했다. 그렇게 이도종 목사를 감시하던 중에 교인 결혼식에 주례하는 이도종 목사의 주례사 내용 중 시국 관련 발언을 구실로 연행해 투옥했다.
교회의 대표 장로를 호출해 교회에서 이도종 목사를 쫓아내지 않으면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김제 경찰들이 김제 지역에서 이도종이 목회하지 못하도록 쫓아낼 심산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도종 목사는 김제 지역에서 떠날 생각으로 하나님께 금식기도를 하며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간구했다.
“하나님 아버지여,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지만 주여, 주님께서 제게 이런 고난을 주신 것을 하나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또 다른 주님의 뜻이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주님,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간절히 기도하던 이도종 목사는 주님께서 고향 제주의 교회와 영혼을 위해 부르심을 깨닫고 응답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도종 목사는 1929년 11월 전북노회 임시회에 시무 사면서를 제출하고, 제주에 가려고 전남노회로 이명했다.
그의 고향 제주도는 이기풍 선교사의 선교로 복음이 전파되어서 여러 곳에 교회가 서는 역사가 있었으나 당시 교회들의 교세가 너무 미약하고 너무나 떨어진 변방의 섬 지역이었기에 목회자가 귀했는데, 드디어 제주 출신 1호 목사 이도종이 제주로 입도하게 된 것은 제주교회를 위한 뜻 깊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1929년 귀향한 이도종 목사는 이듬해부터 제주노회의 중심인물로 제주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1930년에는 총회 전도부에 속한 제주도 전도목사로서 활동했다.
황해노회에서 파송했던 양성춘 목사의 퇴임으로 이를 대신한 직책이었다. 그는 노회 서기를 맡으며 적극적으로 전도활동을 했다.
그는 순회 목사가 되어 개척교회를 설립했다. 일제의 기독교 탄압에도 서귀포교회를 시작으로 남원, 고산, 두모교회 등 10곳의 교회를 개척했다.
이승하 목사
<해방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