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민주혁명 기념일을 지나며, 필자는 국립4·19민주묘지 행사 초청을 뒤로하고 교회 문을 들어섰다. 안내위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며 1부와 2부 예배를 연달아 드리면서, 마음 한편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영령들에 대한 부채감과 함께,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이 서 있어야 할 ‘공의(公義)’의 자리가 어디인지에 대한 깊은 고뇌가 머물렀다.
공교롭게도 오늘 주일 설교는 이사야서 58:1-12 말씀으로 주제는“참 금식”이라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할 수 있었다. 우리 교회에서 오래전부터 시행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릴레이 금식기도’에 어제 아내가 담당했으며 오늘 1부 예배 때 대표기도자였고, 2부 예배의 대표기도를 맡으신 정 장로님은 오늘이 바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금식일이었다. 성경은 금식을 가리켜 “통회하며 괴로워하는 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금식과 예배가 혹여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이사야 58장 본문은 우리에게 천둥소리와 같은 경고를 보낸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하나…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직 자기의 향락을 찾으며 일꾼들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는구나(사 58:2-3).”얼마나 무서운 지적인가? 겉으로는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께 공의로운 판단을 묻는 척하지만, 실상의 삶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경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국면이 국제 유가를 폭등시켰고, 서민 경제는 대공황에 비견될 만큼 얼어붙었다. 이러한 고통의 때에 믿는 자들이 드리는 금식과 기도가 나 자신의 안위와 복만을 구하는 기복(祈福)에 머문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될 수 없다.
현재 세계를 위협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간의 갈등은 역설적이게도 모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는 한 뿌리에서 시작되었다. 절대자와 인간의 관계성에서 각기 다른 역사적 궤적을 그리며 발전해 왔으나, 지금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서로를 향한 ‘못된 주먹질’과 보복의 순환뿐이다. 이사야는 외친다. “너희가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오늘과 같은 금식은 하지 말라(사 58:4).”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배타성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크게 두 단어로 요약된다. 바로 ‘츠다카(정의, Tzedakah)’와 ‘미쉬파트(공의, Mishpat)’이다.
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행하는 구제와 사랑을 의미하고 후자는 사회적 정의를 뜻한다. 이 두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 4·19 혁명이 부당한 권력의 결박을 풀고자 했던 민주적 저항이었다면, 오늘날 기독교인의 금식은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억압 아래 신음하는 이웃의 멍에를 꺾어주는 실천적 결단이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향락을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사 58:10)”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회복을 약속하신다.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밤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0-11).” 아모스 선지자 역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고 외쳤다.
66년 전 이 땅의 청년들이 공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듯, 오늘을 사는 장로와 성도들은 예배의 형식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츠다카와 미쉬파트를 실천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제 정세의 불안과 경제적 위기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형식적 금식’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다. 헐벗은 자를 입히고 골육을 피해 숨지 않는 진정한 경건이 회복될 때, 비로소 우리 한국 교회는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고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는 칭송을 얻게 될 것이다.
김성제 시인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재난과학박사, 우리응답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