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방해 속에도 제주 전역 누빈 순회 전도자
이도종 목사의 목회 지역은 서귀포, 고산, 금성, 남원, 서귀포 제일, 용수, 협재, 삼양, 표선, 중문교회였다. 이도종 목사는 한 교회에 오래 머물지 않고 제주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또한 노회 성경학원장으로 종교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직접 성경학원 운영자금을 위해 만주에 가서 모금했다.
그의 전도 열정은 네 번의 노회장 활동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더욱이 농어촌 지역 목회 활동을 위해 순회 시무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복음 전파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오직 전도를 위해 헌신한 목회자였다.
이도종 목사는 제주 곳곳을 돌며 예배를 인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일제 강점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복음 전파가 황국신민 양성에 지장을 가져오므로 교묘한 방법으로 예배를 방해했다. 외지에서 선교의 열정을 갖고 제주를 찾는 목회자들도 일제의 간섭이 거셌으므로 거의 포기하고 돌아갔지만 어떤 방해도 이도종 목사의 전도 열정을 막지 못했다.
목회자가 거의 없는 교회들을 순회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예배를 원하는 곳을 다니면 항상 밤늦은 시간에야 돌아왔다. 피곤했으나 주님이 주시는 용기와 힘으로 하루하루를 지탱했다.
이도종 목사는 삼양교회에서 전도와 부흥 집회를 인도하면서 삼양 지역 전역에 걸쳐서 활발한 전도를 전개함으로써 삼양교회를 부흥시켰다.
제주 삼양교회에서 조선 진흥 운동 시기와 방법에 순응해서 진흥 활동을 개시한 10월 16일부터 개인전도 공과를 수요일마다 가르쳐 6회에 마치고, 11월 13일부터 한 주간 부인조력회를 위해 새벽기도회를 했다.
11월 27일부터 한 주간 이도종 목사를 청해 매일 오전 5시부터 6시까지 교회 전체가 영적 부흥을 위해 모이고, 오후 7시부터 8시까지는 불신자를 위해 전도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제직회와 조력회를 합해 전도대를 조직하고 11대로 나누어 사방 십 리 안에 4천 호 되는 각 마을을 매일 1대 1구로 전도해 구역마다 7일간 매일 다른 전도대를 파송했는데 이 진흥 운동으로 크게 부흥했다.
또한 이도종 목사는 1933년에 중문리교회에서 ‘제주도 농촌 진흥 전도 강연회’의 강사가 되어 순회강연을 했는데, 이때 중문교회의 악대가 동반되어 청중 동원에 크게 협력했다.
그의 활동을 <기독신보>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도종 목사를 강사로 중문 악대를 함께한 농촌 진흥 순회전도 강연단 일행은 지방 각 기관의 후원을 받아서 좌 1면 10개 리, 중요 농촌 집단 부락 12개 처에 순회전도 강연회를 개최했는데 각 동리에서 이민 회의소(里民 會議所), 청년회관, 학교 등을 집회 장소로 허락받아서 지방 인사들은 남녀노소가 총출동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
이승하 목사
<해방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