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어느 날 새벽, 감사팀이 갑자기 도착하면 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금고 앞에서 남아 있는 돈의 양을 점검할 요량으로 돈의 일부를 몰래 빼돌려 따로 보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잔고를 맞춰 보라고 합니다. 장부를 보고 남은 돈을 헤아려 “잔고가 맞다”고 하면 오히려 틀리는 상황입니다.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할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따로 보관한 돈을 내밀며 다시 맞춰 보라고 합니다. 그냥은 틀려야 정상인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배움도 없이 “우리 가정은 괜찮다”고 여기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할 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분명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냥 살아서는 힘든 것이 오히려 정상입니다. 배워야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문제를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우선 그 느낌부터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뭐가 문제냐”고 따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대화 중 상대가 외면을 하거나 고개를 떨군다면, 그것은 마음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말이 두세 마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것도 관계가 막혀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옳음을 앞세우기보다 이제는 소통의 법을 배워야 할 시기입니다. 가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으면 쉽게 미움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처는 더 깊고 오래 남습니다. 부부 사이든 부모와 자녀 사이든 한 사람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다른 가족들도 함께 상처를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의 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하고 따지는 순간 대화는 더 멀어집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한마디가 오히려 막힌 관계를 푸는 시작점이 됩니다.
가정은 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배우며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오래 참고 온유한 마음으로 서로를 품으며, 내 유익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할 때 가정의 회복은 시작됩니다. 쉽게 성내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사랑의 자리에서 관계는 다시 세워집니다(고전 13:4-5).
가정의 문제는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정하고 함께 배우려 할 때 회복의 길이 열립니다. 서로를 탓하기보다 먼저 사랑으로 바라보는 작은 변화가 가정을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 됩니다. 오늘의 작은 이해와 한마디의 따뜻함이 내일의 평안을 만들어 갑니다. 그 작은 변화가 쌓일 때 가정은 다시 사랑과 신뢰의 자리로 회복되어 갑니다.
김용덕 목사
•인천 영광의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