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인간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경배의 시간이다. 이 거룩한 자리에 우리는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외적인 태도에서도 최선의 경외를 담아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 위에서는 경건의 본질을 무색하게 만드는 생경한 풍경이 목격된다. 바로 예배 위원들이 신는 슬리퍼다.
우리네 신앙 선배들에게 예배당은 신을 벗고 맨발로 들어서는 거룩한 처소였다. 성전 입구에는 신발장이 즐비했고, 간혹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신발이 바뀌어 소동이 일어나는 일도 흔한 풍경이었다. 그 번거로움 속에서도 신을 벗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이곳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성별된 공간이라는 고백 때문이었다. 이는 비단 기독교만의 전통이 아니다. 외국의 유명 성당이나 타 종교의 사원들 중에는 여전히 신을 벗고 입장하는 풍습을 고수하며 방문객에게 장소의 엄숙함을 일깨우는 곳이 존재한다. 신을 벗는 행위는 자신의 일상적 권리를 내려놓고 절대자 앞에 낮은 자로 서겠다는 가장 강력한 경건의 표시였다.
현대에 들어와 신을 신고 예배당에 들어가는 문화가 정착되었지만, 유독 강단에 오를 때만큼은 다시 신을 벗는 관습이 남아 있다. 문제는 그 자리를 슬리퍼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 들었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명령은 인간의 세속적 때를 벗고 거룩함에 동참하라는 부름이었다. 이 준엄한 말씀 앞에서, 거룩을 위해 벗어던진 신발의 자리에 집안에서나 신는 슬리퍼를 꿰어 차는 행위는 신앙적 모순이다.
슬리퍼는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 어울리는 신발이 아니다. 손님을 맞이할 때조차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것이 결례로 여겨지는 문화권에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뵙는 예배에 슬리퍼를 신는 관습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누가 예배당에 슬리퍼를 신고 들어온다면 사람의 눈에 크게 거슬릴 수밖에 없다. 강단 아래에서는 예의를 따지면서, 정작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강단 위에서 슬리퍼를 방치하는 이중적 태도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만약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신을 벗는다면, 그 발은 슬리퍼에 숨는 것이 아니라 맨발로 지면에 닿아야 마땅하다. 슬리퍼를 신을 바에야 차라리 신을 신고 강단에 오르는 것이 더 경건하다. 아니면 슬리퍼를 대체할 예배용 신발을 고안해서 경건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