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목회는 섬기는 목회다. 외국 땅에서 외롭고 힘들게 지내는 유학생들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믿는 아이들도 자신을 정결하게 지켜 나가기 어려운 환경이니 믿음 없는 아이들이 바르게 사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실제로 많은 유학생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거 생활을 하고 마약이나 카지노에 빠져 자기를 망가뜨리고 있다.
유학생 목회는 먹이고 돌보는 게 필수적이라 물질이 많이 필요했다. 하나님께 사람의 후원이나 도움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로 선교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실제로 유학 시절 초기에 가족들과 친구들의 후원을 기대하다 보니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에게 의존하기도 했다. 인간의 도움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어려운 재정 속에서 유학생 목회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아내는 유학생들의 식사를 정성껏 준비했다. 학생들이라고 대충 먹이지 않았고 힘든 형편 속에서도 유학생들의 어머니 역할을 잘해 주었다. 중국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는 매주 100인분이 넘는 불고기 덮밥을 준비해서 그들을 대접했다.
지금도 60여 명의 선교 장학생들과 매년 이곳을 다녀가는 수백 명의 유학생들의 어머니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아이들을 섬기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아내는 늘 웃는 얼굴로 그들을 섬겼다. 고생하지 않고 부유하게 자란 아내,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셨는데도 언제나 소박한 삶을 사는 아내, 하나님이 부어 주신 모든 것에 늘 감사하는 아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귀한 동역자임에 틀림없다.
아들은 아홉 살에 뉴질랜드로 왔고, 이곳에서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받았던 신앙 교육대로 아들을 가르쳤다. 나 역시 아들에게 공부를 강조한 적이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철저하게 주일을 지키고 말씀 속에 살도록 훈련했고, 매일 아침 성경을 쓰라고 권했다. 아들은 고맙게도 지금까지 믿음 안에서 잘 자라 주었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특별히 음악적 재능과 컴퓨터를 잘 다루는 재능을 주셨다. 내가 학교 일을 시작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아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부모들에게 보내는 일을 도와주었다. 학교 팸플릿과 자료들도 만들어 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학교 홈페이지도 멋지게 제작해 주었다. 지금도 교회와 학교에 필요한 영상과 홈페이지 등 컴퓨터에 관련된 것들은 아들이 맡고 있다.
컴퓨터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들은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학문을 공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세상 학문보다 하나님 말씀으로 기초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신학을 먼저 공부하라고 권유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으나 아들은 순종해서 신학대학을 먼저 마쳤다.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들은 바이올린, 피아노, 드럼 등을 잘 다룬다. 지금은 교회의 찬양 리더로 섬기고 있다. 또한 영어 학교의 책임자로서 학교 일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학교뿐 아니라 더 많은 선교 사역을 맡을 책임자로 훈련받고 있다.
비록 세상의 화려한 배경은 갖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아들, 이 믿음의 동역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