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예배는 오랜 세월 동안 묵도로 시작해 왔다. 예배의 첫 순간, 침묵 속에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돈하는 이 전통은 한국교회가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고유한 예배 요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공부한 일부 학자들에 의해 묵도는 ‘비정통적’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했고, 그 자리에 미국교회의 순서를 그대로 가져온 ‘예배로의 부름(Call to Worship)’이 대체되었다. 이는 단순한 예배순서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우리 예배순서를 정하는데 미국의 예배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예배순서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묵도는 한국인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말보다 마음을 먼저 드리는 묵도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그런데도 미국교회의 전통을 ‘정답’으로 여기고, 한국교회의 자생적 요소를 ‘오답’으로 치부하는 것은 신학적 빈곤일 뿐 아니라 문화적 굴종이다. 이는 한국교회의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고, 외국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묵도를 없애고 미국교회의 순서인 ‘예배로의 부름’을 도입한 것은 한국교회의 자생적 신앙 전통을 배척한 행위이며, 미국교회에 맹종하는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한국의 목회자들이나 예배학자들은 미국교회를 기준으로 한국교회 현장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예배 현장에서 일어나는 신앙적 경험과 역사적 자산을 존중하게 여기면서 예배를 위한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묵도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서는 독특한 방식이며, 세계 교회에 소개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가치이다.
외국 교회가 하지 않는다고 한국교회의 자생적 순서인 묵도가 왜 배척받아야 하는가? 오히려 세계의 어떤 교회도 생각지 못한 묵도를 예배순서에 자리매김한 한국교회의 놀라운 독창성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한국교회는 묵도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해석하고 신학적으로 정립해 세계 교회에 알려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미국교회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교회가 한국교회의 자생적 예배 요소를 배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배의 시작을 묵도로 여는 한국교회의 전통은 세계 교회와의 대화 속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영적 자산이다. 우리는 미국교회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대주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한국교회의 독창성을 소중히 계승해야 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