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필은 김태진에게 해례본 이야기를 듣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즉시 그 자리에서 은행으로 달려가 당시 화폐로 ‘일만(壹萬) 일천 원(壹阡圓)’을 찾아서 일천 원은 김태준과 이용준에게 사례금으로 주었고 일만 원은 해례본 값으로 치렀다고 합니다. 당시 물가로 따지면 ‘일만 원’이라면 일반 기와집 열채 값에 해당되는 금액이었고 현재의 물가로 환산하면 무려 30억 원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전형필이 해례본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평가했는지 잘 알 수 있는 일화입니다.
전형필은 이것을 사들이고 나서 광복이 될 때까지 이 해례본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습니다. 한국 문화를 철저히 말살시키려고 했던 일제강점기 말기에 한글 창제원리를 자세히 설명한 이 책이 드러났다면 좋지 못한 꼴을 당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기 때문이죠. 이후 전형필은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피난 갈 때, 이 책을 먼저 챙겼고, 베개 밑에 두고 잠을 잘 정도로 애지중지하며 보존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해례본이 이어져 내려온 것은 그런 전형필의 노력의 덕분이며 1956년에는 이 책을 바탕으로 사진을 촬영하여 만든 영인본(影印本)이 제작되었습니다. 전형필은 이 영인본 제작을 위해 이 책을 흔쾌히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책을 한 장 한 장 해체하는 것까지 본인이 손수 했는데 이 영인본은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었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에서는 정부의 인사를 파견해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탐색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한국의 정세를 살폈다고 합니다. 현재도 중국은 한글을 빼앗으려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가 확실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아무리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을 쉽게 표기하기 위해서 라거나, 자음을 정립함으로써 중국어를 통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등등의 헛소리를 해대며 발악을 해도 해례본이 국보 70호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이상, 국제사회는 한국과 함께 중국의 추악함을 규탄하게 될 뿐입니다. 민족의 혼과 얼을 지켜내기 위해 절대로 더 이상 한국의 문화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전쟁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켰던 간송 전형필 선생께 정중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평생을 문화재수집에 전심전력한 ‘간송 전형필’ 선생과 그의 아호를 따서 설립된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로 합니다. 전형필 선생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서화(古書畵)와 골동품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1934년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 문화재 보전 위한 한옥건물)’을 개설하여 본격적으로 골동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는 한편,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華閣)을 북단장 내에 개설하여 서화뿐만 아니라 석탑-석불-불도(佛圖) 등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소장품은 대부분 국보 및 보물급의 문화재로 김정희·신윤복·김홍도·장승업 등의 회화 작품과 서예 및 자기류(瓷器類)와 불상-석불-서적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1940년대에는 보성(普成)고등보통학교를 인수하여 육영사업에 힘썼고, 8·15해방 후, 문화재보존위원으로 고적 보존에 주력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 고고미술동인회를 결성하고 동인지 《고고미술(考古美術)》 발간에 참여했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1966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칭(改稱)되었습니다.
전형필 선생은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찾아오는데 앞장섰으며, 해방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중에도 한국의 문화재들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였고 그의 사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비롯한 많은 훈포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2013년에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전형필 선생의 우리 문화재 사랑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잘 보관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준 덕분에 한글의 창제원리, 과학적 우수성, 독창성을 올바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근거자료가 되고 있거니와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간송미술관(☎02-744-7830)은 홈페이지를 통해 일부 보수정비공사로 인해서 현재 잠정 휴관 중임을 알리고 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