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원 윅(One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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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이는 배를 잡으며 웃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회갑이 넘은 할아버지가 조그마한 손녀를 상대로 손뼉을 치고 벌렁 뒤로 넘어지고 소리를 지르니 남들이 보면 틀림없이 망령이 들었다고 할 것이었다.

그래서 혜종이 어멈만 문 열고 들어오면 순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침을 뚝 떼곤 했었다. 혜종이는 그것이 또 배꼽이 빠질 정도로 우스운 것이었다.

내일 새벽이면 떠난다는 전날 밤 자지 않고 버티면서 꼭 못 가게 붙잡고 말겠다며 벼르던 혜종이가 새벽 두 시가 넘자 졸리움에는 어쩔 수가 없었는지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이른 새벽, 순호 부부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몰래 집을 빠져나와 혜종이 아범 차에 올라탔다. 순호는 잠자는 혜종이 때문에 공항까지 못 오는 어멈에게 애들을 잘 돌봐주라고 일렀다.

순호는 운전하는 혜종이 아범에게도 일러주었다.

“아범아, 아범도 장남이지만 장남이나 장녀는 동생들보다 이래저래 야단을 더 맞게 되는데 중학교 1학년이면 이젠 웬만한 것은 다 알아서 할 나이니까 혜종이를 너무 야단치지 말라구.”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가끔 동생을 윽박지르니까 야단을 맞는 거지요.”

“아니야 내가 보니까 동생들이 언니를 야단맞게 하려고 엄살을 부리는 거야.”

아들은 싱긋 웃었다.

“알았습니다. 아버지.”

갑자기 실내방송이 들려왔다. 비행기 연착관계로 두 시간이나 연발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거 야단났군! 서울은 몹시 춥다는데 두 시간이나 늦게 떠나는 것도 모르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면 어떡한다지?”

“혜종이 아범이 돌아가기 전에 방송을 해 줄 것이지… 그럼 어쩔 수 없지요. 혜종이 어멈에게 한국에다가 두 시간 늦게 나오라고 전화하라고 해야지요.”

“그런데 말이야…”

순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혜종이가 전화를 받으면 어떻하지?”

“글쎄요. 그렇지만 아직 잠자고 있을거예요. 새벽 두 시나 돼서 잠이 들었으니까요.”

순호는 수화기를 들었다. 서너 번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려왔다.

“할아버지!”

갑작스레 혜종이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어? 어이쿠! 혜종이야?”

순호는 한마디 말만 했을 뿐 얼어붙은 듯이 꼼짝을 못했다. 혜종이가 수화기를 잡고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마리 돼지 얘기나 미식축구 응원흉내도 이럴 때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여봐요 혜종이에요?”

옆에 서 있던 아내가 얕은 소리로 물었다. 순호는 얼굴을 돌린 채 끄덕이며 수화기를 아내에게 넘겨 주었다.

순호는 발을 옮겼다. 사람들과 유리창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러자 주루룩 눈물이 순호의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혜종이가 전화를 받을 게 뭐람!’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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