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내 생의 운명은? ①
필자는 지난 2016년 11월 의료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다. 이것도 임사체험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위암 초기 증상을 발견, 간단한 시술로 2~3일 후에 퇴원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으로 시술했다. 결과는 의료사고로 4개월간 중환자실과 암병동을 오가며 생사를 넘나드는 체험을 한 것이다. 이 일에 앞서 시집 <데자뷔>를 통해 임사체험의 전조(前兆)를 선험(先驗)하기도 했었다. 다음 원고는 <본질과 현실>(2018, 여름호)에 실린 권두 에세이를 가감해 재수록한다.
요즈음 필자의 주요 관심사는 죽음에 관한 문제이다.
찬란했던 해가 잠시 서산에 머물 무렵 나그네 인생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날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그날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진한 노을빛은 내게 두려움과 황망함을 심어준다.
노년기에 접어들어 조급한 생각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서산일락(西山日落), 자연의 순리를 바라보며 나도 죽음의 문턱에 아주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둑을 두고 난 뒤에 복기(復棋)하듯 내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보며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에도 문득문득 “오늘 밤이 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그네 인생, 혼란한 시대에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부유(浮遊)했던 세월이었다. 8·15해방, 공산 치하에서 쫓겨나 월남, 6·25 북한 괴뢰의 남침으로 인한 민족적 비극을 몸소 체험한 것 등이 내가 살아온 수난사이다.
평생 함께한 세월이 주는 불안, 공포 등의 정신적 폐해(弊害)가 평생 내 의식 속에 숨겨져 있었다. 무엇이 불안과 공포심을 수반하게 했을까?
내 생애에 대한 성찰은 물리적 세월 속의 질곡과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세계에 관한 것이다. 이를 문학적 변용으로 표상되는 말과 문자로서의 흔적 즉 나의 문학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또 하나는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종교적 세계관이 어떻게 이뤄져 왔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순식만변(瞬息萬變)이라고 했다. 아침에 푸른 실같이 윤기가 돌던 머리털이 저녁엔 흰 눈처럼 나부낀다는 의미이다. 세월이 순간처럼 빨리 간다는 것, 사람의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변해가는 것 따위를 뜻하는 말이다. 이처럼 인생의 세월이 스쳐간 것이다.
죽음이 지척에 와 있는데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연 없다. 다만 죽음과 존엄사 –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마감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선인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가.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