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순교자들 (4) 남궁혁 목사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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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역경 속에서 믿음으로 한국 신학 대들보 역할

 ‘한국 최초의 신학자 남궁혁의 로마서 강해’ 출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0-12).

남궁혁 목사는 이 길을 택했다.

소기천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한국인 제1호 미국 유학파 신학박사’라는 논문에서 남궁혁을 일러 “초기 한국교회에 눈부신 역할을 감당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인의 심성으로 한국 신학을 말하므로 한국 신학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말이다.

격동의 역사는 그에게 또 한 번의 선택을 재촉했다. 남궁혁 목사는 1932년 평양노회장에 추대되었다. 그리고 그해에 열린 장로회 제21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남궁혁 목사는 부회장을 거치지 않고 총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장로회 신학교 교수로서는 마펫 선교사 이후 두 번째로 총회장에 선출되었다. 그는 총회장으로 선임된 후 9월 14일 토마스 순교자 사업위원회에서 ‘토마스 선교사 기념교회당’을 헌당했다.

한 시대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신실한 믿음으로 살았던 남궁혁 목사는 한국 신학 초창기에 대들보 역할을 했다. 그가 공부한 것은 성서학이었다. 귀국 후에 평양장로회 신학교의 교수직을 수행하는 동안에 그는 성경 번역 사업과 성경주석 발간과 <신학지남> 편집과 같은 많은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글을 썼다. 그가 <신학지남>에 남긴 글을 종합해 보면 그의 전공은 신약 신학이었다.

이미 남궁혁의 로마서 강해는 2004년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최초의 신학자 남궁혁의 로마서 강해》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그의 글이 모두 한자로 기록되어서 오늘의 한글세대가 읽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모두가 알기 쉬운 한글로 풀어서 출판되었다.

로마서 강해 외에 그는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에 관한 강해 설교를 <신학지남>에 연재했다. 이 점에서 그의 연구는 주로 바울 신학에 중점을 두었다. 그가 바울 전공 신학자라는 사실은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예수와 바울의 신학’, ‘예수의 신학과 바울의 신학’, ‘에베소 서신에 보인 영복’, ‘바울의 생애관’ 등의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남궁혁 박사는 바울 신학을 실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신학생들에게 신학은 신앙생활에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신학 하는 이유였다. 그의 신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이 바로 이것이었다. 신학자들이 신신학을 배워서 강의했다. 그래서 총회에서나 학계에서 신신학이라고 성토하면 “왜 신학의 영역을 침해하느냐?”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논쟁이 우리 교단에서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신신학자들에게만 아니었다.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신학과 신앙적 삶이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와 신학이 다르면 적처럼 성토하고 왜곡하면서 반대했다. 이것이 근본주의자들의 삶에서 나타났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 조선신학교가 세워졌을 때 서울 남산에 장로회신학교를 재건하면서 남궁혁 목사에게 학장을 제의했다. 이때 남궁혁 박사는 이미 교단의 분열이 시작되었으므로 자신이 학장을 한다고 합해질 수 없으므로 학장을 고사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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