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학교 처음 봐”
하나님께서 주신 영어 학교를 인수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특히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뉴질랜드 교육법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특정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 만약 이를 어기면 학교가 폐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복음은 전해야만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고, 목회자 자녀 장학생들을 훈련시켜 일대일 전도를 시작했다. 영어·중국어 성경 공부시간과 기도회를 만들었고, 주중에는 장학생 기숙사에서 월요일 성경 공부, 수요일 산 기도, 금요일 찬양 예배를 드렸다. 학교에 설립한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예배 중심의 삶으로 이끌어 나갔다.
수요일마다 드리는 산 기도회에 많은 외국 학생들이 참석했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우기라 비바람과 폭풍우 때문에 산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다. 하지만 폭우와 폭풍이 와도 학생들은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산에 올라가 비옷을 뒤집어쓰고 땅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두 시간 남짓 찬양과 기도로 이어지는 이 기도회는 4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그런 환경에서 4년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복음을 처음 들은 중국, 태국, 일본 아이들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이 더 놀랍고 감사했다. 폭풍우 속에서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감동이 밀려왔다. 도대체 비 맞고, 엄동설한에 오들오들 떨면서 기도하는 것이 뭐가 좋다고 그 자리에 참석했을까? 성령께서 하셨다고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본 지역 주민들도 대단하다며,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 것 같다고 감탄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산 기도가 지속되니, ‘토타라 파크(Totara Park)’라는 이름의 공원이 우리 마을에서는 ‘프레이 힐(Pray Hill)’이라는 이름으로 통할 정도가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4년간의 기도와 눈물이 우리 사역을 지탱해 온 것 같다. 참으로 큰 힘이 되고 도전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학교와 교회, 또 믿지 않는 외국인 학생들의 영혼을 위해 애타게 기도한 믿음의 청년들이 많았기에 뉴질랜드 땅에 선교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이 복음의 현장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기존의 교사들이 학교 안에서 하는 선교 활동에 불만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선교 사역의 열매가 풍성해질수록 그들의 불만은 더 커져만 갔다. 그들은 계속 복음을 전하면 고소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선교에 더욱 집중했다. 결국 그들은 뉴질랜드 교육청에 투서를 보냈다. 그 투서로 우리 학교는 특별 감사를 두 번이나 받았다. 모든 문서를 공개하고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감사원과 인터뷰를 해야 하는 까다로운 감사였다. 감사관이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동안 봐온 학교 중에 학생들을 이렇게 사랑해 주는 학교는 없었습니다. 매년 받아야 하는 감사를 2년에 한 번만 받게 해주겠습니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