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구절: 예레미야애가 3:19–33 다시 하나님 앞으로
팍팍한 현실을 맞는 이들은 질문하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 이 물음은 바로 성전이 무너지고 신앙의 기둥이 흔들렸던 이스라엘의 심정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눈물로 무너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소망의 끈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믿음의 고백을 드립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말씀을 통해, 아프지만 여전히 기다릴 수 있는 성도의 소망을 배워갑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레미야는 40년간 이스라엘에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예언을 농담처럼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결과는 처참한 멸망이었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말씀이 하나도 헛되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 말씀은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모든 것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말씀만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광은 풀의 꽃처럼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벧전 1:24–25). 삶을 지탱할 유일한 기준이 말씀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심기면,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정답을 외우듯이 머리로만 아는 말씀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자리한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의 성취를 눈물로 증언했고, 우리는 그 말씀의 능력을 소망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둘째, 현실을 정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가 낙심이 되오나”(애 3:19–20) 예레미야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픔을 억누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눈물과 탄식,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리는 용기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62편 8절은 “마음을 토하라”고 말씀합니다. 아픈 현실 앞에서 진심을 토로할 때, 하나님은 그 고백을 기도로 받으시고 피난처 되어 주십니다. 기도는 인터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정답을 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나의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무너지면 무너졌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위로가 임합니다. 예레미야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통해 다시 소망을 회복해 갑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새로운 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예레미야는 다시 소망을 고백합니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1–22) 그는 처참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알았습니다. 지금은 끝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그래서 그는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26절)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때로는 인내의 시간이 길고 아프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자에게 주는 은혜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보며 눈물 흘렸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소망을 품습니다.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현실은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하며, 결국 하나님 안에서 소망은 다시 피어납니다.
마무리, “아프지만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눈물로 쓰인 고백이자, 믿음으로 적힌 소망의 노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또한 수백 년 전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증거이지요. 우리도 그 말씀을 믿고, 기다립니다. 아프지만,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현실을 정직하게 하나님께 드리고, 다시 말씀을 붙들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권오규 목사
계산제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