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앙의 자리] 종로(22) 만세의 시작, 그리고 지워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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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에서 다시 묻는 3·1독립만세운동과 기독교의 자리 

탑골공원(종로2가동 38-1) ①

이왕 종각을 중심으로 하는 종로를 답사하고 있으니 종각 주변을 떠나기 전에 한 곳을 더 찾아보도록 하자. 기독교 신앙의 유산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의아한 생각도 할 수 있겠으나 이미 태화관을 찾아보았으니 탑골공원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태화관은 1919년 실제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기에 찾아보았다. 독립선언서 낭독을 갑자기 태화관으로 옮겨서 하게 됨으로써 탑골공원에 모였던 청중들은 혼란에 빠졌고, 그 상황에서 정재용 열사가 자신이 갖고 있던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함으로 사실상의 만세운동이 폭발하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탑골공원은 3.1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재용은 장로교 선교부가 운영하는 경신학교에 1911년 입학해서 4년 동안 공부를 했다. 당시 경신학교는 연지동 선교부 영내에 있었다. 공부를 마친 정재용은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 돌아가서 감리교 선교부가 설립한 의창(懿昌)학교 교감으로 일하고 있었다. 1919년 2월 경 어느 날 서울중앙감리교회(앞에서 찾아본)의 김창준 목사로부터 급한 전갈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김창준 목사는 그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달하는 어려운 일을 맡겼다. 그것은 원산의 감리교회 정춘수 목사에게 전달하는 것이었고, 무사히 전달한 다음 독립선언서 한 장을 가슴에 품은 채 거사 당일 탑골공원에 갔다가 민족대표들이 나타나지 않자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그것을 낭독함으로 현장에서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해주형무소에서 2년 6개월 징역을 살았다. 형기를 마치고 난 후 해주읍교회에서 해방 전까지 봉사했다.  

공원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팔각정은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함으로써 3.1독립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린 장소다.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에 모여서 선언서에 서명했고, 그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행동은 이곳 탑골공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종각 주변을 답사하면서 여기 탑골공원을 찾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안될 일이다. 3.1독립만세운동의 실제적인 출발지로서 탑골공원에는 그 중심에 있었던 지도자의 동상과 당시의 상황을 부조로 제작해서 설치해 놓음으로써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의미를 새기게 하고 있다.

이곳이 언제부터 공원으로 조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없다. 나름의 설들이 있기는 하지만 딱히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유력하게 회자되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필자의 한계이다. 

본래 이 장소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흥복사, 조선(세조)에 와서는 원각사로 이름이 바뀐 절이 있었던 곳인데 연산군 시대에 절이 폐사되었고, 중종 때는 절집도 완전히 철거해 빈터로 남겨졌던 것을 광무 1년(1897) 총세무사로 일하던 영국인 브라운(J. M. Brown)이 건의해 공원으로 조성되어졌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브라운에 의해서 조성되었다는 설도 그보다 빠른 1896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있다. 어떻든 본래 이곳은 절터였고, 불교에 대한 박해와 함께 절이 없어지고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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