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뜻에 따라서 부르신 참된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긍휼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자신의 진흙을 뜻대로 빚을 권리를 가지고 계시며 아무도 하나님에게 대항할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이방인이 포함될 것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은 자들 외에는 제외될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구원의 주 메시아로 믿은 반면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두신 돌, 곧 예수님에게 걸려 넘어졌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이방인들이 받아들여진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비이며 이스라엘이 버림받은 것은 자신의 반역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내 장자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이스라엘, 저희에게는 ‘언약들’이 있었다.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다윗에게 수없이 언약을 새롭게 하셨고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율법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그분의 손으로 쓰신 하나님의 독특한 계시 십계명을 주셨다. 선지자와 제사장, 왕으로서 메시아가 오시는 것과 관련된 약속들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육신으로 나신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게 ‘주’라는 신적(神的) 칭호를 드리며 그분을 ‘죽은 자와 산 자의 주(主)’라고 부르고 그 분의 선재(先在)하심을 말한다. 그 분은 ‘하나님의 본체(本體)’ ‘하나님과 동등(同等)’되신다고 묘사한다. 그분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예수님께 신적 영예와 권능을 드리는 것으로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시고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폐해졌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그들 자신의 실패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항상 두 이스라엘이 있어 왔다. 육적인 자손들과 영적 자손들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적 자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라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약속의 자녀’ 곧 하나님의 약속의 결과로 난 자들이다.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하나님은 결정을 내리셨다. 그 결정을 그들의 어머니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뜻이다. 야곱을 택하신 것은 ‘부르시는 이’의 마음과 뜻에 연유한 것이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안에서 이스라엘에게서만 성취된다. 예수님도 선택을 말씀하셨다.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구속받은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와 경배를 드림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그들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만이 모든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영원토록 찬송할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뜻과 주도권과 지혜와 권능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불의하신가? 바울은 대답한다.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다루시는 근거는 정의가 아니라 긍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동시에 진노의 대상이다. 성경의 여러 말씀으로 상고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 대한 장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