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 위에 부어 주신 축복
나와 아내는 어머니께서 교회에서 빌려다 주신 150만 원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피아노 학원에 딸린 월세방에서 살았다. 한전에 취직한 후에도 월급 28만 원 중 10만 원은 저축하고 18만 원으로 생활했다. 집도 없어서 당시 아내의 할머니가 사는 집에서 창고로 쓰는 다다미방에 얹혀 살았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건축을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50만 원, 두 달 치 월급을 작정 헌금으로 드리기로 했다.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수중에 돈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결혼반지를 팔기로 결정했다. 그래 봤자 금 두 돈이 전부라 아들 권욱이의 돌 반지까지 합쳤다. 그랬더니 50만 원 정도가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어떻게 결혼반지를 파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우리는 결혼반지가 아깝다는 생각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무언가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작은 것을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결혼하고 3년이 되던 해에 서울 시내에 있는 28평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다. 남들이 10년을 열심히 벌어도 장만하기 힘든 새집을 구입하게 하신 것이다.
그때 한전에서 사원 아파트를 짓는다고 사원 조합을 만들어 신청자를 모집했다. 올림픽 직전인 1987년이었기 때문에 25평이 2천만 원 정도 하던 시기였다. 나는 돈도 없으면서 계약금 30만 원을 걸고 25평으로 신청했다. 얘기를 들은 아내가 30만 원을 날렸다며 펄쩍 뛰었다. 그때 우리의 총 재산이 500만 원 정도였으니 그렇게 반응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아내를 아끼시던 할머니께서 1천만 원 정도를 빌려 주기로 하셔서 돈이 채워졌다.
그런데 25평 신청자가 적어 25평 자체가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28평을 분양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차액을 어떻게 메울지 막막했다. 가슴을 졸이며 로열층으로 분양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1층 가장 외진 구석에 있는 102호가 내 몫이 되었다. 계획에도 없던 28평 아파트를 신청해서 빚은 늘었는데 제일 좋지 않은 위치로 분양받으니 속이 상했다. 다행히 102호는 위치가 좋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값에 분양해 주겠다고 했다. 계산해 보니 25평 분양가보다도 훨씬 저렴했다. 게다가 이 아파트값은 올림픽 이후에 네 배가 넘게 올랐다.
하나님께서는 건축 헌금으로 바쳤던 우리 부부의 결혼반지와 아들의 돌 반지를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에게 집을 허락해 주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크고 광대하심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이 집은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에 올 때 유학 자금의 큰 발판이 되었다.
이 집을 팔 때도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우리가 집을 판다는 소식을 듣고 한 노인이 우리 집을 찾아와 얼마든 상관없으니 이 집을 꼭 자기에게 팔라고 했다. 그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은 로열층보다도 훨씬 비싼 가격에 팔렸다. 그 사건은 아파트 반상회의 톱뉴스가 되었다.
“권욱이네는 하나님 백이 있잖아!” 오죽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권욱이의 친구 엄마가 입술로 하나님을 시인했을 정도였다. 유학 자금을 제외한 돈으로 한국에 들어올 때를 대비해 수원에 있는 소형 주공아파트를 사두었는데 지금은 이 집을 장애인 형제들을 위해 기증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과분하게 주신 것을 생각하면 이 집은 하나님의 영광과 구제를 위해 쓰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드렸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상상할 수 없는 큰 것으로 갚아 주셨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