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한국 교회에 부탁드리는 말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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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하지 않은 일반인 교회는 평지에, 교통 좋고 환경 좋은 곳에 세워진다. 그런데 왜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의 교회는 위험 부담이 있는 높은 언덕 위에 있어야 할까?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첫 번째 복음은 가난한 자와 약한 자와 장애인에게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한 동시에 희망과 행복과 기쁨을 주셨다는 데 있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약자들과 병자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복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오늘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애정과 사명이 없기 때문에 비탈길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어도 무관심한 것일까?

각 교회에는 교인들을 위한 수양관과 기도원도 필요하고 교육관도 있어야 한다. 교회다운 면모를 갖추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편을 겪는 장애인에게 연속적인 복음의 사랑을 베푸는 것이 바람직한 교회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탄절에 구제헌금으로 쌀 몇 말과 내복 한두 벌, 연탄 몇 장, 라면 몇 박스 주었다고 해서 교회가 장애인들에 대한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 사회가 펼쳐갈 복지사회 건설의 21세기에 걸맞게 한국 교계가 차원 높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그 정성을 장애인들의 복지사업에 펼쳐줄 것을 부탁드리는 바이다.

장애인도 하나님의 자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장애인 하면 사람들은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하나의 동정의 대상 내지는 불우한 사람으로 대해 왔다.

그런 까닭에 장애인을 집안에 가두어 놓고 하루 세 끼 겨우 연명할 정도로 작은 양의 식사를 제공하면서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태어난 지 일년도 안 되는 아기를 눈이 안 보인다고 해 장애인학교 정문 앞에 갖다 놓고 도망가 버리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생각은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내가 대학교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고시에 응시했을 때 그 당시 최고의 지성인으로 알려진 몇몇 고시원들은 목사는 흠과 결점이 없어야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목사 고시에 불합격시키고 안수를 받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세상과 사회, 교회를 빛낸 사람들 가운데 장애인들이 수없이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실례를 열거해 본다. 위대한 서사시 <실낙원>과 <복낙원>을 집필한 영국의 밀턴은 시각장애인이었고, 음악의 왕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었으며, 온 천하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곱추였고, 바다의 왕자 넬슨 제독과 유럽을 휩쓴 장군 나폴레옹과 위대한 작품을 남긴 셰익스피어는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었다.

존 번언은 감옥에서 불구의 몸으로 유명한 <천로역정>을 썼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휠체어에 앉아서 미국과 세계를 다스렸다. 예배를 드릴 때 부르는 찬송가 중에서도 시각장애인인 화니 제인 크로스비가 지은 찬송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약 성경을 절반이나 쓴 사도 바울은 눈에 장애가 있었고 간질 환자로서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전념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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