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숙(49) 씨는 전남 신안 비금도 섬에서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 혼자서 농사를 지으며 행상을 하면서 자녀를 키웠다. 그는 공부하고 싶었으나 가정이 가난해 등록금이 없는 교대에 입학해 졸업했다.
그 후 1990년 무조건 서울에 와서 교정공무원 9급 시험에 합격했다. 섬에서 태어나 외롭게 살았는데 교도소 역시 또 다른 섬인 외로운 생활을 했다. 20대 초반에 교도소에 들어와 처음에는 이곳에서 자기도 죄지은 사람처럼 느끼며 살게 되었다. 근무를 3부제 교대로 하는데 겨울에 수감자의 방은 난방이 되어 있으나 교도관은 복도에서 난로로 벌벌 떨며 지냈다. 이러한 외로움을 이기려고 혼자서 등산을 했다. 눈이 오는 어느 겨울 도봉산에 올라가는데 등산 초년생이라 아이젠이 없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산악인이 그를 도와주었고 직업이 소방대원이었다. 그 후 결국 그 사람과 결혼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1991년 첫 발령지가 의정부 교도소로 6년을 제하고 24년을 의정부 교도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여성 수용자 팀장으로 130여 명을 관리하는 책임자다. 수감자들이 그를 “엄마”라고 하는데 그가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혼내주기도 하며 때로는 보듬어 주기도 하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 어느 날 사형수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며 기도해 주니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오열을 했다.
교정(矯正)은 대한민국의 ‘자궁(子宮)’이라고 하는데 산파(産婆)가 바로 교도관이다. 교도소 담장보다 더 높은 곳이 수감자들이며 수감자를 방문하는 가족이 없는 자에게 영치금을 넣어 주었으며, 그리고 편지를 써서 주기도 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담 안에 있는 수감자나 일반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다. 수감자 중에는 악한 사람도 있으며 착한 사람도 있다. 교도관은 수감자에게 물을 주고, 밥을 주고, 잠도 재워 주니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직업이다. 그는 방송통신대학을 통해 법학을 전공해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은 교도관이다. 그 후 교감으로 특진해 교도관 생활을 지금까지 보람있게 하고 있다.
김광식 목사
<인천제삼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