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선을 통해 더 깊은 세계를 보게 하신다. 단순한 ‘보기’를 넘어 ‘깨닫는 보기’,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백성의 영적 시선이다. “눈이 있는 자는 볼지어다”(마 13:16) 얼마 전 필자는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더 블룸 2026 아트페어》에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미술 행사를 넘어, 예술·상업·커뮤니티가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문화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예술, 비로소 만개하다’라는 주제 아래, 겨울의 정적을 뚫고 피어난 작품들은 그 자체로 생명력의 선언처럼 다가왔다.
특히 68개 갤러리와 5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규모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확장을 보여주었다. 서양화, 동양화, 팝아트, 미디어아트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문 다양한 작품들은 하나님 나라의 다양성을 떠올리게 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서로 다른 표현이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필자는 그 가운데 한 프랑스 여류 화가의 작품 앞에 머물렀다. 프랑스 여류 화가의 설명을 직접 들으며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그림은 단순한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영혼의 언어’로 다가왔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나눈 짧은 교감은 예술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임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이번 아트페어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단지 작품의 수준 때문만이 아니었다. 전시 이전부터 이어진 프리뷰 전시, 청담동에서 열린 오프닝 커뮤니티, 그리고 예술과 대중을 연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은 ‘예술의 일상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특정 공간이나 시간에 갇혀 있지 않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확장되어 가는 공동체임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또한 이번 전시는 예술과 상업의 건강한 결합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작품 구매의 문턱을 낮추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은 예술을 더 많은 이들에게 열어주었다. 이는 마치 복음이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주라”(마 10:8)
작품 속에서 특히 깊이 다가온 것은 ‘빛’과 ‘여백’이었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빛은 단순한 색채를 넘어 생명과 소망을 상징했고, 비워진 공간은 오히려 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은 말씀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또 하나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필자는 소방관으로서 수많은 재난 현장을 지나왔고, 공무상 재해 공상자로서 암 수술과 PTSD의 시간을 견뎌왔다. 삶의 캔버스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간 위에 다시 색을 입히고 계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림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덧칠과 수정, 그리고 지움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 때로는 밝은 색을, 때로는 어두운 색을 더하시며 결국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해 가신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세상의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물어봤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더 블룸 2026》이 시대 예술 생태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삶의 한복판에서 보여주신 ‘아름다움의 계시’였다. 하나님 나라는 멀리 있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 속에서 색과 빛으로, 그리고 여백으로 완성되어 가는 아름다움이다. “주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한 폭의 그림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성제 시인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재난과학박사, 우리응답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