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으로 살아있다] 응급 호출

Google+ LinkedIn Katalk +

1999년 11월 24일, 퇴원. 순전히 병실의 지겨움, 바깥 공기에 대한 동경, 회복에 대한 희망 무…. 이런 것들이 퇴원의 이유다. 9월 이후 세 번의 입원과 세 번의 퇴원. 입·퇴원의 반복은 악화의 반증이다. 퇴원을 ‘병세 호전’으로 이해한다면 세 번의 퇴원은 기만행위다.

생명이 한 뼘 한 뼘 흘러 떠내려간 빈자리에 죽음이 잰걸음으로 다가서 투그리고 있다. 그래도 퇴원한다. 어쩌랴! 병실의 소독 냄새보다 도시의 매연이 한결 그리운 걸!  억지 퇴원해 집에 도착한 지 몇 시간도 못 되어 병원에서 응급호출이 왔다. 시내 모 병원에서 간기증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수술받기를 원하면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했다. 올 것이 왔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간은 거침없이 흐르는데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망설임은 계속된다.

‘퇴원한 지 불과 몇 시간밖에 안 되었는데… 서두르면 안 좋아.’ ‘지금은 수술을 감당할 체력이 안 된다고 했어!’ ‘수술 중에 사망할 확률이 반이라는데 자청해서 명을 단축할 필요는 없지.’ ‘다시 기회가 올 거야.’ ‘5년을 버텼는데 한두 달 더 못 버틸려고.’ ‘아냐! 이번이 막차일지 몰라. 다음 기회가 오기 전에 넌 죽어.’ ‘넌 지금 벼랑 끝에 있어. 지금이 아니면 회생할 기회가 없어.’ ‘목숨을 건지려면 목숨을 담보해야 해.’

나의 반은 가라고 한다. 가야만 한다고 한다. 사양은 인생 최대의 실수가 될 것이라고 압박한다. 나의 반은 가지 말라고 한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수술을 받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라고, 수술은 실패할 것이라고 속삭인다. 망설임과 결단의 갈림길에 황량한 바람이 일고 갈등의 파고는 휘-잉 질주하는 바람의 치켜든 소리만큼 높다. 똑딱똑딱….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망치 소리보다 커지고 비수보다 날카롭다. 우두망찰하는 나를 아내가 재촉한다.

“빨리 연락 달래요. 안 할 거면 다음 사람 줘야 한대요.”

“어떡하면 좋겠어?”

“…?”

아내가 뜨악한 표정이다. 그녀가 해야 할 질문을 내가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최종적으로 책임있는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다. 식은땀이 흐른다. 심호흡을 했다. 엎드려 침묵 속에 30분 동안 하나님을 찾았다. 그런 망설임의 절정에 갑자기 눈앞에 넓은 푸른 초장이 펼쳐지는 환상이 보이고 그곳에 예수님이 어린 양을 안고 서 계시는 모습이 보인다. 있는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다. (다음회 계속)

김은진 목사

•홀여성선교회 회장

•마곡성은교회 담임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