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초가을, 나는 전주와 광주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중에 베트남전(戰)에 지원해 총 4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후 예비역…
빛을 남기고 간 이야기
[강원희 선교사] 정미소 병원
[강원희 선교사] 위대한 스승들
나는 고허번 박사를 섬기면서 많은 감화를 받았다. 특히 이동진료와 무의촌 선교에 대한 마음 자세와 헌신은 그에게 모두 배웠다 해도 과언이…
[강원희 선교사] 위대한 스승들
1961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전주 예수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을 떠나 전주까지 간 데는 당시 학장이셨던 김명선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강원희 선교사] 얼굴도 마음도 예쁜 간호사
의대생이 된 나는 방학이 되면 원주에 내려가 작은아버지의 병원 일을 돕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의대생이 병원 일을 돕는 것은 있을…
[강원희 선교사] 사막에 두어도 살아날 소년
나의 할아버지는 교회 장로셨다. 나는 그 영향으로 모태(母胎)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황해도 재령 출생이신 할아버지는 1930년대에 만주(滿洲)를 상대로 곡물(穀物) 무역을 하신…
[강원희 선교사] 걸을 힘을 주세요
한번은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네 시간을 타고 가서 하룻밤을 걸었고, 이틀이나 더 걷는 곳으로 이동진료를 갔다. 같이 간 팀원 중에 치과…
[강원희 선교사] 위대한 무기
나는 최소 두 달에 한 번은 이동진료를 나간다. 이동진료는 적어도 이틀 거리 정도는 되어야지 의미가 있다. 하루 거리는 환자들이 쉽게…
[강원희 선교사] 생명을 걸고 생명을 살리다
돌카는 스위스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사람들도 더없이 순박하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 더 달라고 하면 처음 나온 음식보다…
[강원희 선교사] 다시 열린 병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8시간 정도 동쪽으로 가면 해발 7천미터 산골짜기에 돌카(Dolkha)라는 지역이 있다. 여기에 한국의 간질환자 치료기관이자 의료 선교기관인…
[강원희 선교사] 기도로 살린 생명
복막염에 걸린 시골 할아버지를 치료했던 그해의 일로 기억한다. 하루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부인이 배가 몹시 아프다며 병원을 찾았다. 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