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생명을 걸고 생명을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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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카는 스위스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사람들도 더없이 순박하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 더 달라고 하면 처음 나온 음식보다 많이 나온다. 옛날 우리 시골 인심을 보는 것 같다. 돌카는 버스 종점이 있으며 전기도 공급된다. 그 이상의 지역에는 고산지대라 교통수단도 없고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다. 식수도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끌어다 써야 한다.

내가 일했던 카우리산카병원이 감당해야 하는 인구는 15만 명, 매일 3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데 오지의 산골짜기라 병원을 열었어도 의사들이 오려고 하지 않아 참으로 힘들었다. 얼마간은 신촌 세브란스병원 가정의 수련 2년 차인 젊은 의사들이 2개월씩 이 병원을 다녀갔다.

홍사옥 선생이라는 여의사가 차례가 되어 오는 길에 타고 있던 비행기가 그만 산에 충돌해 운명을 달리한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안개가 많이 껴서 네팔 공항 컨트롤 타워에서 회항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비행사가 자기 경험을 믿고 착륙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었다. 레지던트 2년 차니까 서른 전후의 꽃다운 나이였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젊고 사역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불러 가시는 걸 보며 그 뜻을 알 수 없어 마음이 복잡했다.

방글라데시에서 같이 사역했던 김정임이라는 마흔이 채 안 된 간호사가 있었다. 독신으로 사역하며 방글라데시에 있다가 영국으로 가서 훈련받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로 들어갔다. 마다가스카르는 한국 땅보다 더 큰 섬인데 모기가 너무 많아 말라리아에 자주 걸린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간 지 얼마 안 되어 말라리아에 세  번이나 걸렸다. 

그런데 세 번째 걸렸을 때 몸의 여기저기에서 몽우리가 만져져서 의사에게 보여주니 빨리 본국으로 가라고 해서 귀국해 검사했는데, 암이었다. 그런데 항암 치료 후 요양을 하고 다시 마다가스카르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가서 재발했다고 하더니 조금 있다가 부고(訃告)가 들렸다.

네팔에 사역하는 미국인 외과의사 가족에게 예쁘고 귀여운 다섯 살 아들과 세  살 된 딸이 있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식당에 갔다가 그 의사의 아들이 새벽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의식불명이라는 말을 듣고 얼른 집으로 달려갔다. 

영국에서 온 소아과 의사가 이미 와서 지키고 있었는데, 피하 출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수막염 균혈증(Meningococcemia)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것은 사망률이 매우 높은 급성 세균성 질환이었다. 초기에 대량의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유가 가능하지만 그런 여건에서는 진단이 늦어지는 것을 탓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 아이는 24시간을 못 넘기고 그날 밤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얼마 동안 이 무서운 병이 포카라 일원에 번져 여러 명이 사망했다. 스위스에서 온 청년은 트레킹을 하던 도중에 열이 나면서 당일에 사망했다. 

내가 시신을 검사하고 사망 확인을 하여 스위스 영사에게 인계했다. INF 소속 선교사들은 예방 차원으로 모두 항생제를 복용했고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다. 

네팔 정부에서도 라디오와 신문 등을 통해 주의를 당부했으며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다행히 이 병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얼마 후 또 다른 선교사에게 아주 비통한 일이 있었다. 그는 INF와는 무관했지만, 그 선교사의 사역지인 네팔 동부의 산골 당구다에 진료차 방문한 적이 있어서 나는 그를 알고 지냈다. 16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가서 진료했는데, 그때는 몹시 추운 계절이었다.

내가 방문하고 난 며칠 후 그 선교사는 카트만두로 손님을 맞으러 나갔다. 사모님이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잤고 여덟 살 된 쌍둥이 남매는 다른 방에 재우면서 석유난로를 피워두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쌍둥이들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질식사였다. 춥다고 창문을 다 닫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는 가슴을 치며 큰 슬픔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작은 부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로 이어진 것이다. 하나님께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그 가정이 주 안에서 위로를 받으며, 새롭게 힘을 얻고 열심히 살아가기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이와 같은 수많은 죽음을 보며 깨달았다.

‘우리처럼 살아 있는 사람에게 좋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왜 감사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성령님을 알 기회가 주어진 것 때문이 아닐까.’

나는 순교자들의 희생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사랑으로 영혼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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