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숨어 있는 인민군들로 인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인민군들의 시체와 우리 국군의 시체가 들과 산에 그리고 길에도 말할…
삶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 학도병(6사단 민사처)
[삶의 이야기] 풍금(風琴)(리드오르간) <2>
그 후 교습생들도 더 많아지고 여유도 생겨서 피아노 한 대를 더 마련해서 하루에 30명까지도 가르쳤다. 어릴 때는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삶의 이야기] 풍금(風琴)(리드오르간) <1>
다만 한번 창피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교복을 입은 채로 냄새나는 돼지 뜨물 담은 양푼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국민학교…
[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9>
미국 유학을 꿈꾸시며 미국 여행을 하시는 것이 평생 소원이셨던 아버지! 오랫동안 병상에 계실 때도 항상 영어 공부를 하셨던 아버지! 박동진…
[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8>
가끔 어머님께는 교통비라도 드렸으나 아버지에게는 드려보지를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어려움을 잘 이기시는 분으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7>
항상 따뜻한 사랑을 주셨던 외삼촌께서 6.25 전쟁으로 인해 터전을 잃으시고 시골에서 병원을 하셔서 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하셨고, 언니가 대학도 가지 않고…
[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6>
어느 장로님께서 대궐 같은 자기 집 전체를 피난민들을 위해 내놓으시고, 장로님 가족은 장로님이 농사하시는 과수원에 초라한 오두막 집에 가셔서 지내셨다.…
[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5>
서울에 도착하자 영등포에서 탄환을 실은 화물 기차가 후방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영등포역으로 갔더니 피난민들이 개미떼같이 몰려 있었다. 피난민들은 탄환을…
[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4>
집으로 돌아온 후 1951년 1월 4일에 우리 군이 후퇴하게 되어 또다시 피난길에 나섰다. 우리 군의 후퇴로 도로가 막혀서 피난민들은 강촌역에서…
[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3>
계속되는 반장의 동원을 피할 수 없었고, 아버지께서 숨을 곳도 없으셨기 때문에 시골(말거리)에 사시는 고모님 집으로 가기로 하고 우리 가족은 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