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9>

Google+ LinkedIn Katalk +

미국 유학을 꿈꾸시며 미국 여행을 하시는 것이 평생 소원이셨던 아버지! 오랫동안 병상에 계실 때도 항상 영어 공부를 하셨던 아버지!

박동진 선생님께 배우셨던 판소리, 그리고 명곡, 가곡을 즐겨 부르시던 아버지! 찬송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영어로 늘 부르시던 아버지! 그 음성과 노래 소리가 지금도 나의 귓가에 맴돈다.

동생과 같이 자취할 때 가끔씩 출장 가셨다가 들르셔서 용돈을 주고 가셨고, 어느 날은 돈이 없으셔서 차고 계셨던 시계도 팔아서 그 돈을 주고 가신 것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가장 마음이 아팠던 기억은 아버지가 11월 말경에 출장 가셨다가 집으로 가시기 전 몸이 편찮으시면서도 우리에게 돈을 주시려고 들르셔서 냉방에서 밤새도록 우리와 이야기 하시고, 아침 식사도 대충 드시고, 너무 춥다고 하시며 웅크리고 가시던 뒷모습! 생각 날 때면 눈물이 난다.

걷지 못하셔도 양복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옷걸이게 걸어놓으시고, 구두도 빛이 나도록 손질해서 양복 아래에 반듯하게 놓으시고, 지팡이도 옆에 걸어 놓으시고 계셨던 정갈하고 멋쟁이 아버님이셨다.

지극히 따뜻하면서도 끊임없는 사랑에 눈물로 기억되는 부모님 사랑!! 자식을 위해 희생하셨던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풍금(風琴)(리드오르간)

나는 딸이 여섯 아들 하나인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일제 강점기이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직장 전근이 많아 6번이나 전학을 했었다.

초등학교 다녔던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5학년 때에 선생님 따라서 전교생이 논에서 모를 심고 벼를 베던 것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담임선생님께 귀여움도 받고 습자 시간에 글씨 잘 쓴다고 반 학생들 앞에서 칭찬도 받았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중학교 시절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음악 시간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하신 김마리다 선생님께서 음악 시간이면 명곡, 가곡을 많이 가르쳐 주셨으며 학생들 피아노 교습도 하셨다. 나도 피아노를 얼마나 배우고 싶었던지!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어머님께 졸랐다. 풍금이라도 배우게 해 달라고, 우리 집 길 건너에 사시는 서울 할머니께서 교습비를 적게 받고 풍금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서울에서 이사를 오셨다고 해서 서울 할머니라고 불렀다)

서울 할머니는 멋쟁이시며 음악을 전공하신 분이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교습을 받게 해주는 대신 ‘네가 집안일 하고, 동네 각 집에 다니면서 돼지 뜨물을 매일 거두어 올 수 있느냐?’라고 하셨다. 나는 집안일은 항상 하던 일이라 어렵지 않았으나 냄새나는 돼지 뜨물을 거두러 다니기가 부끄럽고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허락하시는 것만도 고마워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교습비가 싸서 풍금을 배우게 해 달라고 졸랐던 것인데 배우기 시작하면서 풍금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서울 할머니는 리드오르간을 갖고 계셨다. 초등학교에 있는 풍금보다 크고 좋은 것이었다. 양발로 바람을 넣어가며 건반으로 소리를 내기란 쉽지가 않았으나 즐거웠고 행복했다.

아침, 저녁 식사준비 하고, 돼지 뜨물을 거두어 와야 하고, 숙제할 시간도 없이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풍금을 배우러 다녔어도 한번도 어머님께 불평한 적이 없었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