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학에서 기독교인으로 만들어지고 훈련된 나는 유학의 꿈도 잠시 잊고 1965년 초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기전학교는 처음 알기 시작한 처녀의…
뒤돌아본 삶의 현장
1965. 01. 23. 편지가 너무 늦어졌습니다. 대학에 남는 일은 결국 과장 비서로 있는 일인데 보수가 적어 그것으로는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63. 12. 7. 밖에서 요란한 눈보라 소리 때문에 잠이 깼습니다. 시계를 보니 10시 40분입니다. 당신과 헤어진 지 일 년이 되어갑니다.…
내가 대전대학에 들어간 1963~1964년에는 대학가에 대학생 성경연구회(UBF, University Bible Fellowship)라는 단체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대전의 한미성 교수와 광주의 배사라(Miss Sarah Barry)…
내가 어린애 셋을 둔 만학의 학생으로 대전대학 수·물과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된 것은 기전학교 교장으로 계셨던 한미성 교수의 특별한 권고 때문이었다.…
대학위원회는 이제는 1954년 6월부터 대학이 세워질 부지를 답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행정관의 위치는 결정되었다. 거기에 참석한 예수병원 원장이었던 구바울(Paul S.…
다음은 아내에게서 온 편지다. <주 은혜 안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감사합니다. 그날은 송정리 고모 댁에서 자고 다음 날 택시로 왔습니다.…
대전대학으로 편입하기로 하고 기전여중·고교에는 사의를 표했다. 학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1963년 1월 15일 먼저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아버님이 계신 시골…
다음날 아내를 병원에 두고 학교에 와보니 한(韓) 교장으로부터 편지가 와 있었다. 반가워서 뜯어보니 의외의 소식이었다. 다음 해 대전대학으로 편입하지 않겠느냐는…
1962년은 단기연호를 폐지하고 새롭게 서력을 쓰기로 한 해였다. 내 생활에도 단기가 서기로 바뀌는 것만큼 큰 변화를 겪었는데 그것은 불신자의 생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