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싶은이야기] 사랑은 믿고 기다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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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청년 한 사람이 약혼을 하고 장사를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떠나면서 약혼녀에게 “전국을 다니며 돈을 많이 벌어 돌아오면 그때 결혼합시다”라고 말했다. 청년은 길을 떠났고, 얼마 후 약혼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돈을 많이 벌어 돌아올 테니 나중에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고 만들어 보자는 다짐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연락은 끊어졌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남자가 돌아왔는데, 약혼녀가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약혼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오랜 시간 나를 기다릴 수 있었소?” 그 말에 약혼녀는 10년 전에 받은 편지를 품속에서 꺼내 보이며 “여기 꼭 돌아온다고 적어 놓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굳게 믿고 10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교훈이 있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남녀 간에 순간적인 뜨거움을 나누는 것이 사랑인가? 그대 없이는 못 산다고 애걸하며 따라다니는 것이 사랑인가?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것을 ‘정욕’이라고 했다.
정욕과 사랑은 다르다. 정욕이 불같이 일어났다 꺼지는 순간적인 것이라면, 사랑은 끝까지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10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끝까지 약속을 믿는 그 마음이 사랑이다. 믿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가끔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아주 야박한 말을 한다. “내가 또 속을 줄 아느냐? 누굴 속이려고 하느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안 속아!” 이렇게 말하면서 반문하고 따진다. 진정한 사랑은 속는 줄 알면서도 믿어 주는 것이다. 당신이 속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속았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은 멀어진다.
사랑한다면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캐묻지 말아야 한다. 물으면 어떻게 살 것인가? 다음부터는 뒤를 밟으며 감시할 것인가? 의심을 하면 그 의심은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일부러 의심을 만들어 내는 비극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의심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랑은 끝까지 믿어 주는 것이다. 순간적인 변화가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지켜 주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핑계로 상대방의 잘못을 계속 캐내고, 책임을 묻고, 따지는 습관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상대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설 것이라 믿는 것인가? 좀 더 증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말하면 변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사랑은 믿고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남자가 있는데, 한 아름다운 자매와 교제하여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매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 여자는 서울에 있었고 남자는 여주에 있었다. 남자가 서울에 가서 그 자매에게 전화로 말했다. “그대가 여기 올 때까지 나는 몇 시간이고 서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자매는 끈질기게 서서 7시간이나 기다리는 남자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사랑의 결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실화이다.

성서 말씀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말하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무조건 원하는 대로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란 모든 것을 참고,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앞서 이스라엘 청년이 약혼하고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장사하러 나섰다가 소식이 끊어졌던 이야기를 했다. 청년이 10년 만에 돌아올 때까지 약혼녀가 약속을 믿고 기다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할지라도 끝까지 오래 참으시며,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탕자의 비유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드러난다. 둘째 아들은 부친으로부터 재산을 받아 나간 후 허랑방탕한 삶을 산다.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부친에게 돌아왔을 때, 부친은 죄 짓고 재산을 허비하여 돌아온 이들을 용서하며 끌어안는다. 아들을 탓하지 않고, 입을 맞추고,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잔치를 베풀며 즐거움을 나눴다. 이와 같은 부모의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참 사랑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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