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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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량의 제 2차 순회 전도 여행 (46)

배위량 탐구와 연구를 위한 길 위에서의 변명(辨明)과 회오(悔悟) <3>

2. 언제까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은 시간에 쫓겨 살면서도 겨울이고 여름이고 비오는 날도 눈오는 날도 배낭을 짊어지고 나서는 필자를 향해 아내가 “오늘도 독립운동하러 나가느냐?”면서 묻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필자 스스로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다부진 생각으로 사람을 모으고 앞서서 나가며 여러 사람에게 권하면서 일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면서도 “이 일이 과연 가능하겠는가?”란 질문을 많이 가지는 것 같다.
사실 이 일은 간단하지 않아 여러 방면에서 다각도로 기획하고 연구하고 다방면의 인사들과 의견 조율을 하는 과정에 있다. 전국 규모로 초교파적인 기구를 마련하여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일하는 기구로 만들고자 의논하고 노력해왔다. 전국적인 규모로 만들기 위하여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여러 방면의 인사들과도 접촉을 해왔다. 그런데, 앞서는 분들을,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분들을 모시고자 계획하고 다방면에 자문을 구해왔다. 이렇게 일을 시작하다보니, 일의 진척이 느렸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 영남신대 중심으로 학생 동아리를 조직하고 대구 경북권 중심으로 순례단을 조직하여 배위량 선교사가 제 2차 순회 전도여행을 했던 노선을 중심으로 순례길을 개발하는 일을 병행하면서 이 일을 이루고자 노력해 오고 있다. 그러면서 배위량이 걸었던 순회 전도여행지에서 길 위의 학술대회를 열어 배위량을 연구하는 일도 병행하여 행하고 있다. 여력이 있으면 좀 더 계획적으로 배위량을 연구하고 그와 관련된 시대적인 교회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술, 지리학에 대한 연구와 탐방이 곁들여진다면 좋겠다.

작은 규모로 대구와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영남신학대학교를 중심으로 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을 규모있게 하기 위해서 전국적인 규모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한듯 하여 지금도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는 동안 얼마 전에 어떤 지인을 만나 대구 경북지역에 조직된 배위량 순례단의 차기 임원진을 구성하고 필자가 맡고 있는 일을 인수인계하고 필자는 대구 경북 지역 이외의 지역으로 눈을 돌려 타지역의 조직을 위해 힘을 쏟는다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일에 좀 더 효과적일 것 같아 그런 계획을 말하고 만나 장시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지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했는지 필자의 일을 인수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실무적인 일에 대하여 일을 분담하고 어떻게 타 지역과 함께 할지에 대하여 협의하기 위하여 만났을 때, 주위에서 들었던 이 일이 너무 과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그래서 전국 규모의 조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일은 후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이 일로 지금까지 함께 일하는 영남신대 어떤 교수와 함께 이 일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전국적인 조직을 계획하기 보다는 우리 조직이 어떻든 유지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기본적인 전제 속에서 새로운 프레임을 짜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
우리가 지금껏 추구한 전국 규모로 전국의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일은 인원이나 경제력에서 너무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터를 너무 크게 벌이지 말고 작은 규모로 구성하여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작은 규모라도 자생력이 있는 단체를 만들어 그것이 좀 더 활동성을 가진다면, 그렇게 기본적인 사업을 하면서 버텨 나간다면 주위의 교회와 신자들의 인식이 달라지게 될 것이고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중에는 전국적인 단위로 확대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에 대단한 분들이 관심을 가졌던 일이라, 이 분들의 관심에 맞게 프레임을 넓히고 정비하느라 벌써 5년을 보냈다. 그러나 너무 각자의 관심 분야가 달라 그것을 조정하다 보니 관심분야가 너무 넓게 퍼지게 되어 집약적인 일에 매진하기가 어렵다. 다양한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초점이 모아지지 않았고 그 일에 너무 에너지 소비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 있었지만, 2019년도에 3.1절 100주년 행사도 은혜 중에 감당했다. 2020년에는 6.25동란 70주년에 대한 특별 강연과 남북의 평화 통일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를 계획하여 시행할 계획을 세웠고 포항 지역 교회와 연합으로 다부동 전투지역과 장사 상륙작전 지역, 낙동강 방어선 전투 지역 등 6.25와 관련된 역사 유적을 돌아보고 “한국교회와 평화 통일”에 관한 주제로 강연과 좌담회 등 여러 가지 계획을 시행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난 2월부터 몰아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의 영향으로 시작도 못해보고 주저앉게 되었다. 우리는 이 일을 겪으면서 인간의 계획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우리는 5년여 동안 판을 좀 더 크게 하고자 하는 계획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한 일이 너무나 작아 눈에 띄지도 않는다. 더욱이 코로나19 상황으로 도보 순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명맥을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실있는 계획으로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고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존재의 영역 안에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 자체가 도전받는 상황에서 판을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기다리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지혜일까?

지금 상황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응당 책임을 가져야만 할 이들)도, 누구 하나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의 도전 앞에서 다들 몸을 사린다. 이런 일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런데 이 일도 해 나가야 될 일이다. 그렇다면 누구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은 이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관심을 가졌던 이들도 머리를 흔들며 “코로나 상황 아래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필자 혼자서라도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필자도 나름으로 어려움이 있다. 교수 직분에 제직 중일 때는 물론 바쁘게 살았지만, 틈을 내어서 일을 해왔다. 그런데 교수로 살다보니 생활을 그럭저럭 해 유지해 나가면서 부업처럼 또는 주업처럼 이 일을 해 왔다. 그런데, 교수직을 은퇴하고 보니 교수직을 수행한 지 큰 햇수가 되지 못한 처지라 생활전선에도 가담해야 할 입장이다. 그리고 신학 초년 시절부터 쓰고 있는 요한복음 주석, 로마서 주석, 마태복음 주석, 요한계시록 주석을 꼭 쓰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런데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너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여 고민이다. 이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생활 전선에 나가는 것도, 주석에 매달리는 것도 어쩌면 필자의 입장에서는 선이고 보람있는 일인 것 같다. 누구 하나 그것 때문에 필자를 비겁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 같다. 필자 나름대로 몸부림치면서 매달려 왔던 것을 주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슬쩍 주위 사람들에게 필자가 이젠 손을 떼면 안 될지에 대한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교수님 손 떼시면 이 일 얼마 못가 허물어집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필자는 무한 책임을 느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구상을 하게 되었다.

1. 어떤 일 때문에 어떤 일에서 손을 뗀다고 해도 잘 유지되어 알게 모르게 아무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가 되도록 하자.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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