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수어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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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만난 경우 어떻게 의사 표현을 하였을까? 무엇을 달라고 하는지 아니면 들어가도 되는지 등 물어보는 뜻을 전달할 수 있었을까? 또 그 모양과 태도를 보고 이해하고 구하는 것을 가져다 줄 수 있었을까? 아마도 한 번에 그 뜻을 알아채고 눈치 빠르게 그것을 구해다 주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여러 번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목마른 사람이 와서 다른 나라의 말을 하며 컵으로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하였다면 얼른 물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고 이것을 먹은 사람은 고맙다는 뜻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거나 다른 제스처를 하며 고맙다고 상대방에게 전하였을 것이다. 청인의 경우 자신이 말하는 뜻이 상대방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손짓 발짓을 하여서라도 자신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농인의 경우는 어떠하였을까? 나라마다 다른 수어는 청인의 음성언어와 달리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똑같은 것도 있다. 하지만 몇 개의 경우는 같은 모양인데도 불구하고 뜻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옛날의 경우를 상상해 보면 농인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서로의 다른 수어를 이해하며 두 가지 수어를 잘 하는 사람이 통역으로 나서 두 집단 간에 의사소통을 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통하는 수어로 인하여 신기함마저도 들곤 하였겠지만 상대방에게 해서는 안 되는 수어를 자신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일상용어로 사용하는 것도 있어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오해와 불편함을 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되었을 경우 그 오해를 푸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고 잘 지내던 관계가 갑자기 적대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발생하였을 것이다. 상대방의 태도가 왜 이렇게 갑자기 바뀐지를 모르는 농인은 상당히 당황하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일은 근간에도 일어날 수가 있다.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여러 나라 농인들을 대하다 보면 상대방의 수어를 잘 모르는 경우 상대국에서 금기시하는 수어를 사용하여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에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상대방에서 금기시 하는 수어 몇 가지는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미국 수어로 알파벳 T를 의미하는 수어는 나라에 따라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프랑스에서는 남성 성기를 의미하며 필리핀, 태국, 한국에서는 여성 성기를 의미하는 수어로 국제농인모임에서 금기시하는 수어이다. 미국 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알파벳으로 사용되는 수어이지만 미국 밖을 벗어나면 조심스럽게 사용하여야 하는 수어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외국 농인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알파벳 T는 가급적 독일 알파벳 T를 사용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곳의 문화를 알고 이야기하여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상대방의 문화와 배경을 중시하여 사용하는 지혜를 가질 때에 화자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전달될 것이다. 이제 농사회도 문화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의 문화가 더욱 발전하여 문화와 정보의 격차가 줄어드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농인 사회에 기독교 문화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선교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어야 할 시기이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 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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