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천사의 노랫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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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연말이었다. 나는 잠들었다가 참으로 황홀한 꿈을 꾸었다. 그곳은 교회 같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교회라고는 두 번 나간 것이 전부였다. 중등교원 양성소의 한 클래스에 있었던 유○○이라는 여학생이 성경과 찬송을 사 주며 단 한 번만 나와도 좋으니 교회에 출석해 달라고 간청했으나 나는 거절했다. 또 같은 클래스에 기독교인 남학생들이 있어 광주의 동부교회에 나가면 백 목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정부를 대담하게 비판하는 설교를 하니 한 번쯤 나가 보자는 권고를 했을 때도 거절했다. 나는 교회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꾸준한 권고로 사사오입 개헌 등 시끄러운 시국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내용은 어떤 것인지 호기심도 있어 처음으로 동부교회라는 곳에 참석한 일이 한 번 있다. 

그때 교회가 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설교보다 찬양대의 노랫소리였다. 그 아름다운 찬양이 어디서 울려 나오는 것인지 내 귀를 의심했다. 교회 분위기의 엄숙함은 나를 압도하였지만, 그보다도 나를 황홀하게 한 것은 눈에는 노래하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웅장한 찬양 소리였다. 마치 천상에서 울려오는 천사의 노랫소리 같았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소리는 내가 앉은 좌석의 2층 뒤쪽 안 보이는 곳에서 찬양대원이 부르는 찬양 소리였다. 그 뒤로 또 한 번 간 일이 있었다. 그때 느낀 것은 그 교회의 목사는 뒷발을 구르며 분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깡충깡충 뛰며 설교했는데 정부를 비방하는 대담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족청파(族靑派)가 숙청되고 이 대통령의 독재가 눈에 두드러지게 된 때였다. 그것이 내가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체험 전부였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꿈에서 그 천사의 황홀한 노랫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 몸이 천사들에게 안기어 하늘로 떠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무슨 꿈이었을까? 새해에는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생긴다는 징표일까? 

아침에 가정교사로 입주해 있던 집에서 세수하기 위해 샘으로 나갔더니 주인집 아주머니가 이날 새벽에 어떤 여학생들이 와서 계속 찬양을 하고 갔는데 못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나는 전날 밤이 크리스마스이브였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가 새벽 송을 돌고 간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누구였는지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사람은 나에게 꾸준히 교회에 나오라고 권고하던 여학생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가 시작되자 나는 유○○에게 혹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내 집에 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갔지요. 내가 가르치는 주일 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맡은 구역도 아니었는데 거기까지 갔지요. 고요한 밤을 3절까지 불렀는데 아무도 안 나왔어요. 그날 밤 거기 없었어요? 그냥 돌아왔어요. 애들은 이 집이 누구 집이냐고 자꾸 물었는데 난감했어요.”

나는 지금 영국의 화가 윌리엄 홀만 헌트의 ‘세상의 빛’이라는 성화를 상상한다. 가시관을 쓴 예수가 왼손에 등을 들고 오른손으로 오랫동안 닫혀 있던 것으로 보이는 문밖에서 문을 노크하는 장면이다. 달빛이 아직 남아 있는 밤과 푸르름이 깔린 새벽 사이다. 주변에는 덩굴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어 그 문은 오랫동안 닫혀 있는 듯하다. 예수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누가 문을 여는가? 밖의 문에는 손잡이가 없다. 이 문은 음성을 들은 사람만이 안에서 열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강제로 끌어내지 않으신다. 안에서 문을 열고 응답하며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내가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등불을 든 예수가 계속 노크해도 대답을 하지 못했던 나를 생각한다. 중등교원 양성소를 마친 그녀는 뒤에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어 도미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나를 구원해 준 천사였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mail : seungjaeo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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