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내 길의 한 줄기 빛 이만영 장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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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터전인 도림교회(16)

범양선교회

또한 이만영 장로는 범양선교회의 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영남교회사 발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영남교회사는 예일대학교에서 교회사를 전공한 전성천 목사가 집필하였는데 당시 한국의 교회사 학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문화사적 관점으로 집필한 역작이었다. 이에 대한 출판 경비를 이만영 장로가 후원하였기 때문에 영남교회사가 발간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범양선교회의 이름으로 장신대 기숙사 건립 기금을 헌금하였는데, 이때 이만영 장로는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기숙사 건립을 위한 기금 일억 원을 후원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는 새로 건축한 기숙사인 영성생활관 1실을 ‘이만영 장로 기념실’로 명명하여 명패를 부착하고 기념실 내부에는 그의 삶과 교훈 등 후학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을 담은 액자를 표구하여 걸어놓기로 하였다. 이는 여기에서 훈련을 받는 목사 후보생들이 이만영 장로의 삶과 영성을 배우는 교제와 훈련의 공간으로 삼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물질로 후원을 해 준 사랑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한 이만영은 말레이시아 선교사에게 오토바이를 기증하였다. 한국장로신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동정 기사로 이 일을 보도하였다.

“이만영 장로(도림교회, 주식회사 광일 회장)는 최근 범양선교회 파송선교사 말레이시아 성서신학원 박은덕 목사에게 선교활동에 필요한 오토바이 1대(약 300만원)를 기증했다.”
도림교회에서는 범양선교회에 2012년도에 4,200,000원을 헌금하였는데 교회의 선교후원금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였다. 여기에 도림교회는 특별선교헌금으로 2,000,000원을 추가로 후원하였다. 이만영 장로는 개인후원금으로 2,000,000원을 헌금하였으며 주식회사 광일의 이름으로 1,000,000원을 별도로 후원하였다.
이러한 후원에 힘입어 범양선교회는 창립 이래 중남미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의 특징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직접 읽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다는 점에 있었다. 즉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가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전국에 널리 전파되어 있었고, 그 결과로 곳곳에 자생적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뜻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성경을 전해주려 한 일의 시작은 의주 국경 넘어 ‘고려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오래 전부터 한국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한 노력들이 하나로 모아져 낯선 곳에서 한글 성경이 탄생하였다. 즉 한국에서 기독교는 말보다 글이 먼저 들어와 선교하였으며 그 결과로 지금의 성장을 이루는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한성서공회이다.

“대한성서공회는 2010년 한 해 동안 1백24개국에 2백16개 언어로 총 5백45만6천6백98부의 해외 성서를 제작, 수출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지난해보다 67만9천1백80부(14.2%)가 증가한 것으로 금액으로는 미화 4백6만6천4백62불(25.1%)이 늘어난 2천23만7천4백63불로 해외 성서 수출을 시작한 이래 최고 실적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제8차 세계성서공회연합회 총회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대한성서공회의 이와 같은 위대한 역사에 이만영 장로가 참여하고 있다. 처음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로스의 고향이 스코틀랜드인데, 이만영 장로는 이 스코틀랜드에 성경을 기증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해당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되는 사업의 중심에 대한성서 공회가 서 있으며 여기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이만영 장로는 성경 반포의 역사를 완전히 뒤집는 차원에서 스코틀랜드에 성경 1000권을 기증하게 된 것이다.
1985년 대한성서공회가 새로운 건물을 건축하여 봉헌식을 할 때 강원용 목사가 설교를 했는데, 자유롭게 러시아 여행을 할 수 없었던 시절에 한국 사람으로는 최초로 강원용 목사가 러시아에 가서 러시아정교회 주교를 만나 ‘아마도 제가 한국 사람으로는 가장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할 사람일 겁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러시아 주교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기 방에 들어가 성경 하나를 가지고 나오면서 ‘이게 당신보다 더 빨리 들어왔다’고 응수하였다는 예화를 들었다.
이 성경은 바로 대한성서공회에서 제작한 러시아어로 번역된 성경이었다. 그만큼 대한성서공회가 전 세계에 배포하는 성경이 광범위하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화이다. 이 성경에는 모두 “printed in korea”라는 로고가 찍혀 있는데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이 로고를 볼 수 있다.
이만영 장로는 대한성서공회와 20년 넘는 인연을 갖고 있다. 1993년 6월 대한성서공회 감사를 맡아 2001년 10월까지 그 임무를 감당하였다. 그리고 2001년 11월부터는 대한성서공회 이사를 맡았다. 대한성서공회의 이사는 이만영 장로를 제외하고 전부 목사였다. 그만이 장로인 셈이다.
이만영 장로는 대한성서공회에서 평신도 사업가 출신의 이사로서 대한성서공회가 성경을 번역하고 출판하여 보급하는 일에 있어서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한성서공회가 제본업체를 독립법인으로 설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만영 장로는 대한성서공회에서의 기관사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제 마음으로 굉장히 흡족하고 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섬김은 대한성서공회가 제일이고 제가 마음으로 커다란 은혜를 받는 기관이었어요. 제가 그동안에 한 20여 년 섬겨왔지만 항상 성서공회에 대한 아쉬운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봉사를 좀 더 많이 하지 못한 것과 물질적으로도 별로 한 게 없다는 것이었어요. 유의웅 목사님이 시무 하실 때인데 성서지원금은 제가 반을 냈어요. 물질적인 책임감으로 그렇게 했지요. 그래서 제가 이제 은퇴할 때가 되어서 성서공회에 몸만 왔다가는 기관이 아니라 저도 무엇인가 흔적을 남겨야 겠다는 생각으로 새로 온 사장한테 봉사할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좀 기다려 보라고 했어요. 얼마 후 전화가 와서 성경을 출판해서 외국에 보내려고 하는데 제게 한 천여만 원만 헌금해 줄 수 있겠냐고 해서 응했어요. 이 성경이 스코틀랜드에 보내졌지요.”

대한성서공회에서 감사와 이사로 보낸 20여 년은 이만영 장로에게 참으로 많은 보람을 주었다. 대한성서공회 역시 이만영 장로의 사역을 통해 여러 가지 차원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대한성서공회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된다는 역사적인 사실 앞에서 언제나 커다란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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