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광야 같은 시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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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아프다고 행복원에서 전화가 온 것은 3월 6일 조반 전이었다. 나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허둥지둥 행복원으로 달려갔다. 얼굴은 핼쑥해지고 열로 입술은 부풀어 터져 있었다. 억지로 미소하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는데 목이 쉬어 전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희미하게 나더러 “나오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목포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론 그 몸으론 여행할 건강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데려가 눕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에게는 이 상태를 전혀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도 그녀를 데려갈 곳이 없었다. 시골의 어머니에게 데려갈까도 생각했으나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나는 우선 그녀를 시내 여관을 잡아 눕혔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속수무책이란 이런 때 쓰는 말 같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돈을 구하러 시내를 뛰어다녀야 했다. 겨우 5,000환을 쥐고 약국에서 약을 산 뒤 여관으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쓰러져 누운 그녀를 보고 왔는데 좀 기력을 회복한 듯했다. 밖으로 나와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그녀는 거의 먹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역으로 가자고 했더니 집에 가기 싫다고 했다. 한순간 나도 그녀와 헤어지기 싫다고 생각했다. 지성은 욕망에 예속된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고 욕망했다. 그래 어쩌자는 것인가? 나는 요즘 나 자신을 겨우 달래서 진정하고 있는 때였다. 나는 이 사회에서 들어 쓰기에는 못 미치고 버리기는 아쉬운 그런 잉여인간(剩餘人間)으로 산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사명선언(使命宣言)을 하였다. 나는 4년제 대학을 마칠 것. 도미 유학의 꿈을 버리지 말 것.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말 것. 시행세칙으로 먼저 등록금을 마련하자. 이병도의 국사대관(國史大觀)을 정독해서 유학 시험(영어, 국사, 상식)의 국사 시험 준비를 마치자. 영어는 매일 새 단어 10개씩을 외우기로 한다. 그리고 한국의 문예 월간지와 일본의 문예춘추 등을 읽어 소설기법을 연마하자. 이렇게 담배도 끊고 외출을 자제하며 살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친구들이 내 거처를 알아 찾아와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다 직장을 가진 애들이어서 끌려나가면 나는 주도권을 잃은 수행비서였다. 그러나 원이 앞에서는 내가 사령관이 돼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다. 

“안 돼요. 집에 가서 먼저 몸을 회복하세요.”

이렇게 단호히 말하자 그녀는 자기도 안다고 했다. 그러나 좀 더 머물다가 가고 싶단다. 우리는 영화관에 갔다. 당시 영화는 연속상영이어서 시작하는 시간이 없이 언제나 들어가, 보고 싶을 만큼 보고 나오는 때였다. 좀 늦게 역에 갔더니 그녀는 이제는 목포로 가지 않고 서울 언니네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윈 그녀는 언니가 바로 어머니였다. 그런데 그때는 급행인 태극호는 벌써 떠나버렸고 야간열차만 남아 있었다. 그것도 놓칠 세라 그 표를 샀는데 입석이었다. 나는 걱정 되어 송정리까지 내 차표도 사서 함께 탔다. 저녁 7시 차였는데 탈 때부터 만원이었다. 나는 그녀를 세워두고 어디 자리는 없을까 복도를 헤매었지만 어떤 자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송정리까지 가면 사람이 좀 줄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더 많은 사람이 타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내리자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다. 어떻게든 가겠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만 하차했다. 혀를 악물고 눈을 크게 떴는데도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내 눈앞으로는 원망스러운 2등칸과 침대칸이 하품하듯 흔들며 스쳐 갔다. 원은 꼭 도착하기 전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집에 와서 잠을 이룰 수 없어 긴 편지를 썼는데 생각해보니 서울 주소를 갖고 있지 않았다. 나 자신을 자책하는데 초를 헤맸다. 그녀는 몇 개 역을 지나기 전에 쓰러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누가 그녀를 일으켜 주나, 누가 그녀를 돌봐 주나? “당신에겐 약하지만 전 다른 누구보다 강해요”라고 그녀는 말했는데 정말 견디어줄 수 있을는지 나는 정신착란 직전이었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오승재 장로 <seungjaeo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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