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3•1운동 신드롬’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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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운동 102주년이 되는 해이다. 해마다 맞는 삼일절이지만 국가적으로 유례없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이 시기에 맞이하는 삼일절은 100여 년 전 이 땅에 더 짙은 암운이 드리워졌을 때, 3∙1운동을 통해 민족의 역량을 총 집결하여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역사를 기억하게 하기 때문에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모두가 알고 있듯 3∙1운동이 일어나기 약 50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일제의 침략에 의해 힘없이 무너져갔고 운요호사건으로 문호를 강제 개방한 이래,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했으며 일제가 설치한 통감부에 의해 우리나라의 행정권, 사법권, 경찰권은 무력화 되었다. 이후 조선의 군대는 해산되었으며,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은 폐위되었고 결국 1910년 8월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강제 합병되었다. 이렇듯 나라가 주저앉아 일어날 힘이 없던 시기에, 3∙1운동은 다시 한 번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한민족의 긍지를 드높이는 사건이었으며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민족운동이었다. 당시 잔악한 일제처럼 총과 칼은 없었지만 자유, 평화, 질서라는 더 크고 위대한 가치로 그들의 야만적인 탐욕에 경종을 울렸다. 

이러한 위대한 민족운동의 주축에 기독교가 있었다고 하는 점은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왜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그 어려운 일의 선봉에 섰을까? 당시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매우 빈약해서, 불교나 유교는 말할 것도 없고 천도교와 비교해도 천도교 교세의 20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수 종교였다. 그러나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민족의 위기를 좌시하지 않았고 3∙1운동을 주도하였기에 가장 많이 희생당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통계를 보면 3∙1운동이 발생한 해 4월 말까지 투옥된 기독교인은 2천여 명에 가까웠으며, 이 숫자는 불교, 유교, 천도교 세 종교를 모두 합친 1500여 명보다 훨씬 더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3∙1운동뿐만이 아니라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시기에도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에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신앙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신앙이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라는 말씀처럼 우리 선배들의 신앙은 조선을 향해 비추는 하나님의 빛이었고 그들의 빛 앞에 이 땅 어느 곳도 숨겨지지 못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많은 시련과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지금 우리는 교회로 나아가기만 하면 예배할 수 있으며 지금과 같은 비대면 시대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예배하고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신앙의 선배들이 민족의 고난에 앞장서서 피와 땀으로 세운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올해 3∙1운동 102주년을 맞이하면서 잠시나마 지독한 압제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이 땅에 비추며 자유와 독립을 주도했던 우리 선조들의 신앙과 지혜를 마음속에 되새겨 보아야 겠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100여 년 전 신앙의 선배들처럼 우리에게 닥쳐있는 국가적인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에 힘쓴다면 우리 또한 후손들에게 더 굳건한 교회와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모습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억압하고 있는 이때에, 이 시대에 필요한 믿음과 지혜, 용기를 주시라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남관우 목사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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