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포럼] 담담타타(談談打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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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타타(談談打打)란 중국 공산당의 협상전술 용어다. 즉 공산당이 세력 확장에 유리한 상황일 때에는 계속 공세적으로 밀어붙이고 상황이 불리해질 때는 협상을 하라는 뜻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통일 과정에서 썼던 전술이다. 돌이켜보면 마오쩌둥(毛澤東)은 1921년 공산당을 창당한 이후 28년 만에 거대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를 내쫒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마오쩌둥이 1921년 공산당을 창당하고 세력 확장에 들어가자 중국은 전통적인 국민당 정부와 폭력을 일삼는 공산주의 세력 간의 극심한 충돌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었다. 장제스는 공산당 토벌에 나서서 중국을 평정하려 했지만 공산당 토벌은 쉽지 않았다. 국공(國共)내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는 만주사변이 발발했다. 장제스는 공산당을 토벌하는 한편 일군과도 싸워야 하는 2중고를 치러야 했다. 이때 마오쩌둥은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제안했다. 공산당과 국민당이 연합하여 먼저 일본군을 내쫒고 국내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제안했던 것이다. 장제스는 이에 동의하고 대일전(對日戰)에만 신경썼다. 그러나 공산당은 그 틈을 이용하여 일군과의 싸움은 회피하고 자기세력 확장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대국민 선무공작과 선전선동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다. 이제 국민들은 부패한 국부군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군을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결국 마오쩌둥은 전쟁과 부패로 얼룩져 힘이 약화된 장제스의 국민당정부를 몰아내고 1949년 10월 1일 공산당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중공→중국)을 수립하게 됐다. 이것이 공산당이 즐겨 쓰는 ‘담담타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상황이 불리하게 되면 적과도 손을 잡고 대화를 통해 기회를 모색하고, 다시 상황이 호전되면 적을 물리치는 전술이 바로 ‘담담타타’ 전술인 것이다. 마오쩌둥은 이 전술로 중국을 통일했다. 북한도 이 전술을 즐겨 사용해 왔다. 1970년대 이후 수십 년 동안 남북 대화를 유지해 온 것은 북한이 즐겨 쓰는 통일전선 전술때문이다. 즉 담담타타의 시험장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시나리오로서 ‘평화‘를 내걸었고 대외정책을 말할 때 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입에 달고 다녔다.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을 폐기시키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하겠다는 뜻이다.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북한의 핵전쟁 위협에 지치고 불안했던 유권자들의 가슴에 파고 들어가 선거에서 승리했다. 선전 선동으로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진행된 2차례에 걸친 ‘미북 정상회담’을 주선하고 중재자로 나섰지만 결과는 성과 없이 끝났다.

6.25남침 이후 70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던 북한의 통일전략이 문재인의 중재로 한 순간에 변화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정상회담에 기대를 거는 것은 미국을 속이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하며, 미국으로부터 김정은 정권을 보장받기 위한 협상전략에 불과했던 것이다. 담담타타의 일환일 뿐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다소 관심을 보이자 북한은 정상회담에 목을 걸었다. 그러나 공산당 전략에 하도 많이 속아온 미국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북핵문제는 기본구조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북은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으며, 미국은 비핵화 없이는 어떤 대화도 불가하다는 것이 기본입장이어서 두 나라의 협상은 시작부터 불가능했다. 평행선을 좁힐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미북정상회담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70년간 적대관계로 지속된 미국과 북한이 문 정부의 중재로 하루아침에 평화협정을 맺거나 종전선언을 성사시킨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은 북한 공산당의 집요한 평화공세 전략이다.

배영복 장로<연동교회>
• 한국예비역기독군인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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