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간디의 비폭력운동과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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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Gandhi 1869-1948)는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 사상가, 인도 건국의 아버지다. 1887년 18세에 영국 런던에 유학하여 법률학을 전공하였으며 24세 때 인도계 회사의 소성 사건을 변호하기 위하여 1년의 계약으로 고국을 떠나 22년간을 남아프리카에 머물며 이곳에 이주한 인도 동포들의 인권 향상을 위하여 투쟁을 하였다. 당시 백인 정부가 지배하던 남아프리카에는 인도인 약 7만 명이 노예로 살고 있었다.

간디가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겪은 인종차별과 모욕이 그로 하여금 투쟁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도시 프리토리아를 여행하는 기차에서 “인도인은 1등석에 앉을 수 없다”고 하며 기차에서 쫓겨나는 모욕을 당했다. 그리고 그가 마차를 타고 가던 중 백인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마부에게 두들겨 맞은 일이 있었으며, 그리고 백인 전용 호텔에 입숙하려다가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간디는 1894년 인종차별 반대투쟁 단체인 ‘나탈 인도국민회의’를 창설하고 차별의 실상을 외부에 알렸으며 간디의 철학인 ‘사티아그라하(비폭력평화저항운동)’는 이때 남아프리카에서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남아프리카의 나달주(州) 의회가 인도인의 선거권을 박탈하여 입법화하려 할 때 간디는 이 법안을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하였다.
간디 사상에 동조하여 평화적 시위에 나선 수많은 인도인이 정부에 의해 투옥되거나 처벌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감수하였다. 이때 간디도 1907년 법안 반대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투옥을 당했다. 그는 이후에도 투쟁을 계속하다가 1915년 인도로 영구 귀국하여 인도가 식민지 통치를 받던 영국에 본격적으로 맞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결국 인도는 1947년 독립을 하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되는 2015년 인도와 아프리카를 잇는 고리로 간디의 운동이 다시 등장한다. 간디의 비폭력 운동은 인류역사에 영원히 남아 교훈을 주고 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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