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와디 켈트 입구인 여리고의 삭개오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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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의 수쿠크 채권은 빛 좋은 개살구이다

흔히 여리고 작전이라고 말한다. 견고한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차례씩 여섯 바퀴를 돌고 마지막 날에 일곱 바퀴를 돌고 제사장이 양각나팔을 불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수 6:1-7) 그러나 라합은 유일하게 구원을 받았기에 나중에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음으로 메시아의 후손이 이새의 줄기에서 태어나는 축복을 누렸다. (마 1:5-6)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 도시가 있는 여리고는 사해 북동 쪽 13㎞ 지점인 유다 광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오아시스이다. 여리고는 예로부터 키가 10m가 넘는 종려나무가 많아 ‘종려의 성읍'(신 34:3, 삿 3:13)으로 불리며,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첫발을 디딘 성이다. 여리고는 요르단 골짜기(해발-225m)에 있는 지역의 특징 때문에 사계절 매우 온화한 날씨를 가지고 있다. 헤롯 대왕은 이러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여리고에 겨울 궁전인 사이프러스를 짓고 오랫동안 머물러 지냈으나, 그의 삶도 여기서 끝이 났고 베들레헴 남쪽에 있는 헤로디움에 장사되었다.

구약의 여리고는 시작되는 와디 켈트는 24km로 험난한 여정이다. 시편 120-134편이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올라가는 노래’ 곧 ‘환난 중에 부르는 노래’요(시 120:1), ‘천지를 지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 (시 134:3)는 내용이다. 그런데 신약의 여리고는 68~69년에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가면서 모두 멸망시켜 버렸다. 비잔틴 시대에 여리고 근처에는 수많은 수도원이 자리를 잡았으며, 480년 이집트 테베의 요한이 와디 켈트에 자리잡은 수도원은 유명하다. 요한은 516년에 가이사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가 노년에 이 수도원에 돌아와서 여생을 보냈다. 525년에 코시바의 게오르기아, 즉 성조지가 이 수도원에 살면서 그를 기념하여 성조지 수도원으로 이름이 확정되었다.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당한 최초의 성 여리고는 Tell es-Sultan이라고 불리는 곳이며(수 5-6장), 가나안 점령의 교두보였다. 예로부터 이 여리고는 순례자들의 통로로서 물과 음식을 얻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시기도 하였고, 반대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도 하였다. 이 길 사이는 유다 광야가 놓여 있어 일반적으로 위험한 길이었다. (눅 10:25-37)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야기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예수께서 지나가시곤 하였던 신약시대의 여리고는 헤롯이 지은 별장이 있는 와디 켈트의 입구에 있다. 예수께서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세리장 삭개오(눅 19:1-10)와 또 거지 맹인 바디매오를 만나 구원하기도 하셨다.(막 10:46-52)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중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께 심히 소리 질러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이 소리를 듣고 바디매오를 데리고 와서 그 믿음을 보고 눈을 뜨게 해 주셨다.

이 일 후에 예수께서는 여리고로 들어가셨다. 여리고에는 세리장이면서 부자였지만 키가 작은 삭개오가 살았다. 예수를 보고 싶었지만, 사람이 많아 볼 수 없어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삭개오를 보시고 ‘내려오라’ 하시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삭개오는 말하기를 자기 소유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또 누구에게 토색한 일이 있다면 네 배나 갚겠다고 고백하였다. 예수께서는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시며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셨다.

여리고의 삭개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는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흔히 뽕나무로 번역된 구절에 익숙한 독자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이 시대의 삭개오는 누구일까? 탐욕에 찌들어 있던 삭개오가 예수를 만난 이후의 삶은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무슬림은 이자수수를 금지하는 코란을 따라서 수쿠크 채권이란 것을 발행한다. 정말 무슬림이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줄까? 그렇지 않다. 이자 없이 돈을 빌려준다고 하면서 수수료를 챙긴다. 2년 후에 원금을 돌려받으면서 또 수수료를 뗀다. 이렇게 해서 처음 1년 치의 수수료에 덧붙여서 2년 치에 또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 만일 돈을 빌리면서 수수료를 낼 돈이 부족하면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원금에 가산된다. 2년 후에 원금과 수수료에 가산금이 눈덩이처럼 붙어서 막상 돈을 갚으려고 해도 여의치 않으면, 그 모든 것이 원금이 돼서 수수료가 가중된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하면 돈을 빌리는 사람은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이자가 없다고 좋아하다가, 수쿠크 채권에 발목이 잡힌다. 이런 연유로 이슬람의 수쿠크 채권방식은 악법이고, 악독 업주가 재산을 증식하는 대표적인 전략이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난 이후에 철저하게 주머니를 회개하였다. 웨슬리는 ‘주머니를 회개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고 말했다. 무함마드를 신봉하는 이슬람은 이자를 안 받는다고 위선을 떨면서, 실제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엄청난 수수료를 부쳐서 원금을 불려가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와 같다. 이슬람은 삭개오처럼 회개해야 한다.

지금 여리고에 얼마나 많은 무슬림이 살아가고 있는가? 시험산 입구와 엘리사의 샘 그리고 여리고 성벽 인근에서 기독교인을 상대로 엄청난 장사를 하면서도, 무슬림은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있다. 여리고의 무슬림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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