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한국교회학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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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교회학」의 대두

「한국교회학」은 2002년 5월 사단법인 성산한국교회사학연구원(당시 원장 민경배 박사)에서 주창되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첫째, 당시 전 세계적 시대 대세였다. 이른바, 미국학, 일본학, 한국학, 러시아학 등등이 학문의 주제로 떠올랐다. 예전 같으면 미국사, 미문학, 영어 등등 미국이라는 전체 나라 중 어떤 한 부분이 다루어졌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학문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국학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학, 일본학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선교역사 겨우 100여 년의 ‘한국교회’가 보인 눈부신 성장과 발전, 당시로서는 세계 10대 교회 중 5대 교회가 한국에 있는 그런 기적과 같은 현상들이 제3세계 국가의 교회 지도자 등 세계 교회 지도자들에게 숱한 도전을 주었다(지금은 세계 50대 교회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 유럽의 교회들이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 등에 뿌리째 흔들리던 때에 세계 교회 지도자들은 한국교회에 눈을 돌렸던 것이다. 당시 연세대학교, 호서대학교, 평택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등등에 제3세계 교회 지도자 등 많은 이들이 와서 한국교회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때 성산한국교회사학연구원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무엇인가를 ‘한국교회학’으로 정립하여 알려야한다고 보았다.

2. 한국교회학과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宣敎史)

이렇게 출발한 한국교회학의 첫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복음’이 ‘한국’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가. 한국교회학에서 한국교회 초기 선교역사가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여기에 있다. 즉 복음을 만나기 전 한국과 기독교 선교와 함께 복음을 만난 후의 한국을 비교하면 우리는 위대한 기독교 복음의 능력과 그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교회는 민족을 개화하고, 독립운동을 하고,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새마을운동을 주도하고,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지금 공산주의 주사파의 악마적 세력에 맞서서, 다시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입국론의 건국의 4대 기둥을 분명하게 하며 제2의 건국을 이루어가는 자유대한민국의 중추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위대한 행진은 바로 복음의 능력에서 온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한국교회학을 다루고자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복음의 능력을 한국 초기 선교 역사에서 흔적을 또렷이 하여 따라가다 보면 떠오르는 두 인물이 있다. 한 명은 한국 최초의 상주 목사선교사 호레이스 G. 언더우드(1859-1916)이요 다른 한 명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국부 이승만 건국대통령(1875-1965)이다. 전자는 복음을 이 한국에 전해주고 근대한국을 복음 위에 세워간 선교사요, 후자는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의 생애를 온통 자유대한민국을 복음 위에 정초, 발전시키는 데에 바친 한국인 크리스천이다. 존 모트는 언더우드를 가리켜 ‘국가 경영자’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리고 이승만은 자유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이요 ‘국가 경영자’였다.

류금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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