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수상] 제주도에 심은 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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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제조업이란 한 우물만 파왔던 우리 회사의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는 결정이었다. 바로 제주도에 양식장을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가 열리면서 기업가로서 변신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기에 고민 중에 결정한 일이었다.
그때가 내 나이 60세, 은퇴를 앞둔 시기라(그때만 해도 60세가 되면 은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퇴 후에는 살기 좋은 곳으로 가서 살자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CBMC 모임에서 활동하던 김수웅 장로가 제주도에 양식장을 개장했다며 나를 초청했다. 그길로 제주 양식장을 견학하게 되었는데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해변, 바다의 오름과 맑은 공기 등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은퇴 후 제주에서 살겠다고 결심하고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사업거리를 찾게 되었다. 제조업을 그만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조업은 우리 기업의 기반이고 장수하는 기업으로 가는 토대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사업의 다각화를 꾀하는 차원에서 바닷가 먹거리에 집중한 것이다.
‘과거에 먹을 게 없어 먹거리에 관심을 가졌던 때와는 다르다. 이젠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다. 다만 어떤 것을 먹느냐, 그 질과 차별성에 치중해야 한다.’
2003년 제주도에 광어 양식장을 짓기로 하고 위미 바닷가 옆에 있는 파인애플 농장 부지 약 5,000평을 매입했다. 양식장에 필요한 면적은 대략 3,000평이었는데, 한 회사가 1,500평을 넘을 수 없다는 법 규정에 따라 가나안수산과 ㈜동국수산으로 회사를 분할해 매입했다. 제조업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였고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터라 자주 가볼 순 없었지만 제주도라는 환경을 워낙 좋아했고 청정한 지역이라는 메리트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수산업을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주류 사업이 아니라 마음 편하게 시작하려던 일이었건만 그곳 주민들의 무리한 요구로 처음 시작할 때 다소 갈등이 있었으나 곧 서로를 이해하고 친숙해지면서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설명한 대로 처음 제주도에 양식장을 시작하려고 땅을 마련한 곳은 위미마을로 기온도 따뜻하고 농토도 좋아 농사가 잘되는 곳의 파인애플 농장 부지였다. 아담하게 시작할 수 있겠단 생각으로 양식장 공사를 위해 중장비를 들고 첫 삽을 뜨려고 할 때였다. 양식장 부지에 도착해 보니 생각지도 않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양식장 결사반대.”
이미 베어진 파인애플 농장 위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바라보며 기분이 어찌나 상했는지 모른다.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주민들이 반대를 하고 나서는가 싶어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어쨌든 지역 주민들은 잘되던 파인애플 농장을 갈아엎고 양식장을 한다는 것이 마을의 발전에 좋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강국창 장로
• 동국성신(주) 대표이사
• 가나안전자정밀(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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