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농사역자의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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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라는 영화가 소개되었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Guess Who’s Coming to Dinner’로 한글 제목은 원제목과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흑백 갈등이 아직도 존재하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 영화이다. 종교계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어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상당 부분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농인에 대한 교계의 생각은 다른 장애인에 비해 최근까지 해소되지 않는 느낌이다. 1946년 영락교회안에 농인들인 모여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한경직 목사님께서 배려해 주셨지만 장로교단에서 농인 목사님이 배출된 것은 1982년이다. 남한에서 농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나서 36년이 지나 부목사로서 강주해 목사가 영락농인교회에 부임하였으며 담임목사로 위임받은 것은 1991년이다. 농인신학생을 배출하려는 시도가 문영진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어 개신교에는 많은 농인목사님이 농인교회를 이끌어 오고 있다. 하지만 특정 교단에서는 다른 교단에 비해 늦게 농인에게 목사 안수를 허락하였는데 그 이유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을 이해하기를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안수를 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로 비약하여 목사 안수를 꺼려했었기 때문이었다.

가톨릭에서는 사제 서품을 주기 위해서는 몸에 흠이 없어야 한다는 레위기 21장의 말씀으로 인해 농인에게 신부 서품을 주는 것을 미루어 오다가 2007년 박민서 신부가 아시아 최초로 농인신부 서품을 받아 부제가 된 것이 효시이다. 특히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데 농인들이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신부님이 정순오 신부밖에 없어 그동안 여러 가지로 힘들어했다. 정 신부 역시 전국을 순회하며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기에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후 가톨릭 농아선교회는 농인을 위한 에파타 성당도 봉헌되고 농선교에 열심을 보이고 있다. 개신교의 농인신도 수는 크게 증가하는 느낌은 없는 것 같다. 흔히들 30만 농인 중 크리스천이 7,000여 명이라는 말이 교계에 돌고 있다. 이는 미선교종족과 같은 퍼센트이다. 속히 농인목회자의 양성을 위한 방안과 지원이 필요한 시기이다. 한때 농인교역자를 원하는 젊은 농인세대가 많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농인 중 신학대학을 입학하는 율이 전에 비해 현저히 적으며 젊은 층이 농인교역자가 되고자 하는 열의도 전에 비해 떨어진 느낌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마는 그중에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는 통역에 대한 지원이다. 음성언어로 강의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어동시통역이 필요한데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는 기간 동안 통역을 담당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수업을 원활히 들을 수 있다. 한국수어언어법에는 농인은 수어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지만 현실은 대학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으며 교육받는 사람이 통역을 데리고 와야 한다. 이러한 일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학기 내내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부담하여야 하기 때문에 통역 없이 친구의 노트 필기로 수업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공부하는 것도 상당히 스트레스인데 통역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이중고를 겪으며 학업을 마쳐야 하는 입장이다. 속히 통역에 대한 대안이 세워져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 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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