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린이주일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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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오니 사방에 꽃들로 잔치가 열렸다. 우리를 덮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어두움이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이처럼 넘치는 봄꽃의 잔치는 두꺼운 마스크를 뚫고 이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잿빛 같던 우리 마음을 분홍으로 물들인다. 봄이 오고 사방이 꽃으로 물드는 이 계절에 우리는 다시 꽃주일이라 칭하는 어린이주일을 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어린이주일을 “꽃주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이들이 꽃같이 예뻐서 나온 이름이기도 할 것이고 여린 이파리처럼 순하고 작은 아이들이 그들의 일생을 꽃길로 걷길 바라는 소망도 그 이름 안에 넣어 둔 것일까? 질곡 많던 우리 역사 속 그 신산(辛酸)의 시간을 온몸으로 겪어낸 어머니들은 그 주름진 얼굴에 미소 가득 띤 채 아이들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꽃이 제아무리 예쁘다 한들 이 아이만큼 예쁠까.” 다시 어린이주일을 기다리며 우리 어머니들이 내려주신 어린이를 향한 이 찬사와 경탄을 기억해 보면, 우리가 어린이주일을 왜 꽃주일이라 칭하게 되었는지는 이내 그 뜻을 마음으로 알게 된다. 따뜻한 계절이라고는 다시 오지 않을 듯 몹시 추웠던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다, 우리가 지나온 그 겨울은, 다시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내지 못할 것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봄이 되고 얼음이 녹으니 꽃은 다시 활짝 이렇게 피고 또 어김없이 피어 우리에게로 왔다.

어린이주일을 왜 꽃주일이라 칭하게 되었냐? 누가 물으면 짐짓 두 눈을 감고 이 봄날에 활짝 피어난 꽃송이들을 떠올려 보라. 지체하지 않고 피는 이 봄꽃들, 하나님 지어주신 태초의 시간이 되면 자기가 어디에 심겨 있든지 힘차게 일어나는 저 꽃들, 그리고 그 어느 것 하나 슬퍼하거나 울적한 기운 없이 생명력 넘치게 피는 저 꽃들을 그대 부디 떠올려 보시라. 그리고 어린이들을 향한 하나님 창조의 섭리가 무엇인지 다시 기억하고 새겨보라. 마치 누가 그들의 작은 겨드랑이에 간지럼이라도 먹이는 듯, 무엇이 그 작은 목덜미에서 피아노 연주라도 하는 듯,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찬란하게 웃고 또 웃으며 자기들에게 주어진 모든 날을 놀라워하고, 경탄해 맞이한다. 풀숲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이어 나르는 개미를 봐도 그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놀라워 한다. 설교 시간에 듣는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 엘리야가 쌓은 제단에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은 동그란 눈을 말갛게 뜨고 입술을 크게 벌려 경탄하고 감동하며 손뼉을 치고 노래한다.

그들의 그 놀람과 경탄 안에서 하나님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는 그런 분이시다. 비록 우리를 둘러싼 전염병의 시대가 어두워 다시는 꽃이 안 필 것 같았지만, 엄동설한을 지나니 저 꽃들이 이처럼 피어 우리에게 안겨 왔듯이 우리 어린이들이 가진 영성의 빛이 우리에게로 번져 들어 우리의 깊은 어두움을 이길 힘을 더해주고 있다. 다시 꽃주일을 앞두고 이제 어린이에게로 나아가자. 시대를 이길 고견을 구하러 높은 산에 오르지 말고, 이때를 헤쳐 갈 현명한 대답을 얻으려 현인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릎을 구부리고 얼굴빛을 맑게 한 다음 어린이에게로 나아가자.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놀라워하는 그 동그란 눈동자에서, 그들이 부모와 이웃을 만날 때 좋아하고 기뻐서 팔 벌리는 그 작은 몸짓 안에서 우리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웃을 반겨 사랑하는 그 사명의 길을 새롭게 배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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