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두르지 족과 아랍인 무슬림에 대한 선교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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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멜산에서 엘리야에게 응답하신 하나님

“머리는 갈멜 같고”(아 7:5) “해변의 갈멜 같이”(렘 46:18, 사 33:9) 아름다움을 노래할 때마다 등장하는 해발 482m의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 산’이라 불리었다. 기원전 4세기의 헬라인들은 이 산을 ‘거룩한 제우스의 산’이라 불렀으며, 기원전 1세기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 산을 가리켜 “동상도 신전도 없이 오직 제단과 예배만 있는 산”이라 하였다. 갈멜산은 이스라엘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하이파가 있는 지중해로부터 시작되어 이스르엘 골짜기를 따라 남동쪽으로 길게 뻗은 약 25km 가량의 산맥으로, 종교적 의미를 많이 가지고 있던 산으로 기원전 860년 아합왕 때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우상숭배 중심지였다. 

열왕기상 18:19-40에 의하면, 엘리야는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아합과 대결하였다. 이때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선포하고,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다. 이때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소리를 높이면서 회개를 하였다. 그 순간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 후에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모두 죽였다.

흔히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하늘로부터 임하는 여호와의 불로 제단을 사르고 3년 6개월 동안 가뭄에 시달린 이스라엘 땅에 단비를 내리게 한 사건만을 기억하지만, 모든 불의 심판이 임하게 되자 우상을 섬기던 이방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으로 진노를 발하게 하신 헤렘법 곧 진멸법으로 다스린 것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갈멜산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르키온은 영지주의 이단을 신봉하면서 구약의 하나님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면서 구약성경을 거부하였다. 그는 플라톤의 이원론을 받아들여서 영혼만을 중시하고 육체를 악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품성인 공의의 측면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반영한 것이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숭배를 척결한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천하에 드러낸 엄청난 사건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가장 번창하였던 예수 당시의 제사장 숫자가 약 480명 정도였음에 비교한다면 기원전 9세기의 바알 종교가 이스라엘 내에서 얼마나 극성을 부렸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새로운 종교 질서를 세웠으며, 종교적 위기로부터 구출하였다. 갈멜산 꼭대기에는 1868년에 세워진 ‘므흐라카'(불의 제단)라 불리는 카르멜 수도원이 있다.

갈멜산의 엘리야 기념교회에서 다소 긴 구절인 열왕기상 18:20-40을 읽고 엘리야에게 임했던 성령의 불길이 한국교회의 민족복음화 제단과 남북의 복음통일을 이루고 우한 급성폐렴 이후에 정부·여당에 의해 수시로 탄압을 받아서 교회 폐쇄와 주일성수금지로 침체된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다시 부흥하는 날이 오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충만한 역사가 하늘로부터 임하기를 기도하면, 엘리야 때의 불로 임하는 감동과 큰 은혜를 다시 체험할 수 있다.

갈멜산에 봄이 되면 지천으로 아네모네가 붉게 피어나서 샤론의 꽃으로 오신 예수의 십자가 보혈을 상기시킨다. 순례객들에게 잠시 버스에서 내려 사진을 찍게 했더니 한 손 가득 꽃다발을 들고 버스를 올라타서 나중에 그 아름다운 언덕을 찾는 이들에게 더 보여줄 것이 없을 듯하여, 요즘은 아쉬움을 달래려고 버스 안에서 차장 가로 설명을 하면서 지나간다.

갈멜산 인근에서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된 흔치 않은 청동 접시를 전시하고 있는 두르지 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가끔 마을 장터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서 두르지 족은 갈멜산과 헐몬산 인근에 소수가 거주하고 있어서, 이들의 장터는 비교적 규모가 커서 갈멜산 인근에서 순례객을 맞이한다. 제대로 차려놓고 좌판 위에다 물건을 내놓고 팔기도 하지만, 갑작스럽게 와서 바닥에다가 물건을 내려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도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에게 선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두르지 인과 아랍인 무슬림에 대한 선교는 접근이 용이하다. 이스라엘에 선교사가 파송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지만, 두르지 족에 대한 선교는 성과가 없는 편이다. 아랍 지역에 4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수십 년째 사역하던 김홍근 선교사는 엉뚱하게 최바울이 주도한 2000년에 인터콥에 의해 실시된 이스라엘 걷기 사역을 돕다가 그동안 쌓아 온 선교지를 잃어버리고 체류와 입국 그리고 아랍인 선교에 제약을 받아, 이제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독일에서 후방 선교를 지원하면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인터콥은 교회관을 올바르게 회복하고 더는 수십 년 동안 뿌리내린 중동 지역에서 최정예 선교사들의 입지를 마구 흔들어대는 공격적인 행동과 청년 대학생을 충동하는 즉흥적인 사역을 지양하고, 현지에 파송된 선교사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여야 한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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